12.12사건으로 처지 뒤바뀐 가해자.피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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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제 두발 쭉 뻗고 자게 됐군요.』 12.12사건 당시 신군부측에 의해 보안사 서빙고분실의 「어둠」속에 갇히는 등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마침내 「햇볕」을 받고 있다.어두운 역사의 청산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이 정반대로 뒤바뀌고 있는 것이다. 가해자측의 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씨는 교도소.구치소의 싸늘한 감방에 갇혔다.또 보안사의 허화평(許和平).허삼수(許三守).권정달(權正達).이학봉(李鶴捧)씨를 비롯해 경복궁팀.병력동원팀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고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국권탈취에 맞서 싸우고 저항했던 이들은 뒤늦게 명예회복과 함께 편안한 여생을 보내거나,저승에서나마 부릅뜬 두 눈을편히 감을 수 있게 됐다.
12일로 만 16년만에 양지(陽地)에 선 당시 피해자들은 정승화(鄭昇和.육참총장).장태완(張泰玩.수경사령관)씨 외에도 많다. 신군부측의 수경사 헌병단 병력이 쏜 총탄으로 폐(肺)가 뚫렸던 하소곤(河小坤.68.당시 육본작전참모부장.소장)씨는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폐 한쪽 3분의2가 없어져 숨쉬기가 곤란하고,세브란스병원에서 건강체크를 계속중인 때문만은 아니 다.
『반란군을 막지 못한 자책감이 가슴을 누릅니다.다만 역사가 바로잡히게 돼 두다리 뻗고 자는 거지요.』 12.12당시 鄭총장의 강제연행을 목격하고 육본 상황실로 황급히 갔다 총알세례를받은 河씨는 2개월간 세브란스병원과 통합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수십차례 수혈을 받다 B형간염에 걸렸으며 이후 몇년간 고생했다.그가 몸을 움직일 수 있 게 된 것은 80년2월7일.그러나신군부는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그날로 즉시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불려가 20여일간 감금됐으며 예편서를 쓰도록 강요받았다.이후 6월 하순까지 그는 자택에 연금됐고 그후 한참동안 감시받았다. 5공 들어 신군부측이 죄책감때문인지 호구지책을 마련해주기는 했다.은행연합회 감사(82~86년).교통안전진흥공단 이사장(90~92년)을 지냈다.그후 집에서 소일하며 지내고 있지만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당시 부상한 총장 수행부관 이재천(李在千.전쟁기념관이사장)씨와 육본헌병감이었던 김진기(金晋基.토지개발공사이사장)씨등 피해자들도 河씨와 비슷한 삶을 살다 「역사적인 복권」을 맞고 있다.그러나 당시 특전사령관 정병주(鄭柄宙)씨는 목을 맨 시체로 발견돼 타살의혹을 사고 있으며,그의 비서 김오랑(金五郎)소령도당시 총격으로 숨졌다.나머지 피해자들은 대부분 직업없이 역사의물줄기가 바뀌는 것을 바라보며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참뜻을가슴에 새기고 있다.
김영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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