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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노고단 → 대원사 종주 200회 “야~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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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200번째 지리산 종주를 나선 산악인 이광전씨가 7일 오후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지리산 길따라’ 제공]

8일 오후,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 주차장 식당. 인터넷 등산모임 ‘지리산 길따라’ 회원 100여 명이 모여 이날 지리산 200회 종주를 마친 산악인 이광전(66·대한산악연맹 부산시 연맹 자문위원)씨를 축하하는 모임을 열고 있었다. 이씨가 펴낸 책 『지금도 지리산과 연애 중』(대원출판사, 348쪽, 1만5000원)의 출판기념회도 겸한 자리였다. 이 책은 그가 지리산을 종주하면서 틈틈히 적어둔 메모와 소감, 그리고 찍어둔 사진을 엮은 것이다.

5일 오후 3시20분 전남 구례군 성삼재를 출발한 이씨는 노고단과 세석·치밭목 산장에서 하루씩 묵는 3박4일 간의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대원사에 도착해 200회 종주의 꿈을 이뤘다. 지리산 종주는 노고단∼천왕봉 사이, 높이 1000m가 넘는 봉우리 20여 개가 있는 주능선을 며칠씩 걸어 대원사까지 가는 것이다.

힘은 들지만 계절별로 변화무쌍한 날씨를 만나고, 구름 속을 오르내리는 듯한 환상적인 느낌이 산악인을 유혹한다. 길이는 한동안 50㎞로 알려졌지만,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의 실측 끝에 현재는 39.2㎞로 공인돼 있다.

이씨는 부산에서 섬유회사에 다니던 1971년 7월 2일 종주를 시작한 이래 37년 만에 200회 종주의 기록을 세웠다. 부산공고와 부산대 공대 산악부에서 산을 탔던 그는 “첫 지리산 종주에서 별빛과 바람소리, 물소리에 반해 버렸다”며 200회 종주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지리산의 매력에 빠진 그는 10회(1989년 12월 9∼10일), 100회(1999년 4월 3∼5일), 150회(2005년 10월 20∼23일) 종주 기록을 계속 쏟아냈다.

지금이야 교통이 편리하고 등산로가 좋아 마음만 먹으면 하루만에도 지리산을 종주할 수 있다. 하지만 70년대 초에는 5박 6일이나 6박 7일이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야간통행금지까지 있어 통금이 풀리는 새벽4시 화엄사 입구에서 경찰관이 찍어주는 도장을 팔뚝에 찍고나서야 입산이 가능했다.

70·80년대에는 지리산에 쉴만한 대피소가 없어 식량과 무거운 군용 A자형 텐트를 지고 다녀야 했다. 등산화가 없어 대용품으로 신었던 군화는 땀에 절었다. 방수가 되지 않던 구식 배낭에서 김치 국물이 흘러 나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종주를 멈추진 않았다. 81년 주말에 시간을 내기가 비교적 쉬웠던 동아대 행정 직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2002년 6월 퇴직한 뒤에도 계속 지리산을 찾고 있다. 91∼97년 동아대 체육학과에서 ‘동계 산악훈련’을 강의했으며, 대한산악연맹 등산학교에서 강사로 활동할 정도로 등산이론에도 해박하다.

이씨는 자신의 산행을 모두 기록해 놓고 있다. 그는 200회 종주를 마치고 “산에 가면 작은 욕심도 부질없이 느껴지고, 대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우게 된다. 이제 배낭을 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300회 종주를 마치고 산에 묻히고 싶다”라고 적었다. 

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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