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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세율 인하, 공공지출 절감 … 정부 지갑을 줄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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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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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겁나게 오르는 물가와 날로 깊어지는 경기침체로 어렵다는데 ‘머슴’은 일자리와 월급을 걱정하지 않고 지내겠다?

엊그제 나온 민생대책이란 걸 보며 갖는 느낌이다. 이번 민생대책은 범위와 강도 측면에서 미흡할 뿐만 아니라 파급효과 면에서 위험요소를 품고 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민생의 어려움은 해소되지 않은 채 고물가와 저성장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민생대책을 훑어보면, 한마디로 지난해 거둔 세금 중 정부가 쓰고 남은 돈(세계잉여금)과 올해 거둬들일 세금으로 고유가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문과 계층을 돕겠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로는 고유가 등으로 겪고 있는 생활고를 일부나마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민생대책을 바꾸어 생각하면, 지금 물고 있는 세금 부담은 그대로 둠으로써 예산으로 짜놓은 정부의 씀씀이(사업이나 공무원 월급 등)는 그대로 유지하거나 늘리겠다는 것이다. 물가 상승이 견딜 만하거나 민간경기 위축이 심하지 않은 상황에서나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다.

그뿐 아니라 이래저래 민간에 돌려줄 세금을 일단 정부가 거둔 다음 특정 부문의 민간에게 나눠준다는 것은, 좋은 일도 정부의 손을 통해서만 이뤄지게 해 정부 개입과 시장 왜곡을 더욱 심화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시쳇말로 민간경제의 위축은 아랑곳 하지 않고 ‘큰 정부’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정책의지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식의 민생대책이 갖는 더 큰 문제는 잠재적으로 또는 이미 드러난 저성장과 물가불안이 그대로 현실로 고착될 위험을 키우게 된다는 점에 있다. 겉보기에 그럴듯한 민생대책을 이렇듯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금의 민생대책은 물가 상승 압력을 해소할 기회를 놓치고 있다.

유류 등 지금의 세율을 그대로 둔다는 것은 민간이 지는 세금부담이 그대로 이어져 민간 부문의 위축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안 그래도 국제가격이 겁나게 오른 유류, 원자재 및 기타 가격에 세금이 보태어져 더욱 오르는 국내 가격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세금으로 인해 추가적으로 물가가 오른 것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렇게 해서 높아진 물가가 전 분야로 확산될 여지를 마련하게 된다는 점이다. (국제 가격과 세금 부담으로 높아진) 물가 상승 압력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이것이 직접 관련 분야뿐 아니라 여타 분야의 임금 인상 요구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질소득이 줄어든 근로자와 가계로서는 임금 인상 요구는 당연한 반응이다(또 이미 물류 관련 부문뿐 아니라 다른 분야의 노조들이 임금 인상 요구를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더구나 공공부문의 지출과 임금 수준이 지금 수준을 유지하거나 더 늘어나는 경우에는 민간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는 사회적 공감대마저 형성하게 될 것이다.

그 임금 인상 요구가 일부라도 수용되는 경우, 일부 부문에 집중된 지금의 물가 상승 압력은 전 부문으로 확산될 것은 불 보듯 하다.

둘째, 이번 대책은 민간부문 활성화의 기회 또한 날려버릴 수 있다.

민생대책대로 (재정악화 우려를 내세워) 세율 인하를 하지 않고 공공지출을 유지한다면 지금의 민간부문 위축을 그대로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는 고임금과 고물가에 억눌린 (투자와 소비 등) 민간부문을 더욱 움츠리게 할 것이다. 결국 이번 대책은 나라 전체에 저성장(또는 침체)과 고물가, 즉 스태그플레이션의 악순환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지금의 민생대책은 그 범위와 폭을 넓히는 방향으로 시급히 대폭 수정·보완돼야 할 것이다.

그 핵심은 ▶일부 부문에 대한 세금 환급이나 보조금을 가능하면 전 분야(정 안 되면 유류, 원자재 및 법인세를 중심으로)에 걸친 큰 폭의 세율 인하로 확대·전환하는 것과 공공지출의 확대를 억제하거나, 가능하면 삭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정책수단은 동시에 동원될 때 그 효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세율 감축은 일석다조(一石多鳥)의 정책수단이다. 민간의 세금 부담을 낮추어 민간부문을 활성화하는 한편, 세금(관세 포함)에 의한 가격상승분을 해소함으로써 물가상승 압력을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율 감축에 관해 두 가지 우려가 있기는 하다. 세금이 깎여 유가가 내려가 (유류 등) 소비가 (다시?) 늘어날 수 있고, 또 유류세 등이 덜 걷혀 재정적자가 심화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지금 상황에 비추어 너무나 한가한 걱정으로 보인다. 국제가격 상승에 따른 지금의 물가 수준과 향후 추세(또 그에 따른 실질소득의 감소)를 고려할 때 유류세 등을 인하한다고 해서 소비가 우려하는 것처럼 크게 늘어난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 세율 인하를 하면 조세수입이 줄어들고 따라서 재정적자 요인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은 세율 인하를 하지 말아야 할 핑계가 아니라 공공지출을 동결(또는 가능하면 삭감)해야 하는 근거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세율 인하와 공공지출 삭감이 동시에 실시돼야 한다는 얘기다.

재정적자 해소 목적 외에도 공공지출이 삭감(특히 공공부문의 임금이 삭감)돼야 할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현재 일부 부문에서 나타나고 있는 가격과 임금 인상 요구가 전 부문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공무원과 공기업 부문 근로자들의 임금이 오르는 것을 극도로 억제하거나 가능하면 삭감해 지금 민간부문이 겪고 있는 고통의 분담을 공공부문이 실천함으로써 민간부문과 근로자들에게 희생과 (임금 인상 억제 등) 고통 감내를 요청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하자는 얘기다. 그래야 지금의 물가 상승 압력이 임금 인상을 통해 전 분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해 물가 안정의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공부문의 감축과 대폭적이고도 광범위한 세율 인하는 안정성장 기조를 정착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물가 안정과 경제 활성화가 절실한 지금 상황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와 크고 강한 민간경제’를 요구하고 있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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