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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최근 인플레이션 위험의 실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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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신정부가 출범하면서 펼친 성장 중시 전략은 고유가 충격에 휩싸여 그 현실성이 의문시된다. 당장 인플레이션과 성장둔화에 따라 위험관리 부담이 커지면서 계획추진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 고유가 흐름이 진정되면 상황이 개선될 수도 있다. 그러나 원유선물(future delivery:contango)시장의 최근 동향은 고유가가 상당 기간 계속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원유 선물시장 참여자들이 향후 유가 강세를 점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유가 충격의 장기화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 당장 오일 쇼크에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취약층을 보호하기 위해 감세나 정부보조금 지원과 같은 재정지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다고 이런 지원책을 마냥 지속할 경우 재정부담도 커지게 된다. 정부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난 5년간 세계 에너지 수급의 균형은 깨져 버렸다. 고성장 전략을 취한 중국·인도는 세계 석유 수요 증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미 글로벌 차원의 자원제약이 가시화된 상황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을 통한 인플레이션 부담 전가는 주변 국가들의 성장 모멘텀을 약화시키고 있다. 옆의 나라가 가속페달을 밟기 때문에 우리가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혼란에선 시장 자체의 원활한 수급조절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달러화까지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대응은 결국 타국에 인플레이션 부담을 전가시키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인플레이션 아래에서 예전 같은 거시정책 수단을 함부로 동원해선 안 된다. 인플레이션이 주로 신흥 주요국들의 고성장 전략으로 초래된 점, 그리고 성장과 물가의 상충관계가 심화돼 자체적 정책선택의 여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 주면서 국제시장 여건이 개선될 때까지 우리의 적응 능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단순하게 물가 안정만을 정책목표로 삼아선 곤란하다. 국가 리더십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의 인내와 고통을 요구하는 정책조합을 모색하기도 쉽지 않다. 지금으로선 해외시장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가 앞으로 다가올 쓰나미에 견딜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위험노출 정도를 줄이고 자체적 성장동력을 점검하는 수준이 현실적인 방책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시장위험의 노출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분산·헤지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할 필요가 있다. 시장에서 파악할 수 없는 위험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이라는 사실을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깨워주고 있다. 거품붕괴를 지나치게 우려한 나머지 금융시장을 옥죌 경우 또 다른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오히려 시장거래를 활성화시키고 시중 유동성의 쏠림현상을 완화하는 쪽이 훨씬 바람직하다.

둘째, 유가와 식료품 가격 상승으로 고통을 받는 취약계층의 부담경감은 재정이 떠맡아야 할 고유의 역할이다. 하지만 물가관리에 치중하는 바람에 자체 성장동력 육성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본다. 거꾸로 재정을 동원해 내수부문의 고용창출 인프라는 적극 확충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낙후된 지식 서비스, 특히 사회 서비스 부문의 생산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우리 경제의 구조적 취약요인인 경제부문 간 생산성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중국발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중국 특수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히려 국제적으로 차별화된 성장 계획이 필요하다. 앞으로 세계 자본은 장기적으로 안정 성장이 가능한 지역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를 겨냥해 우리 경제의 체질을 튼튼히 다지고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위기를 잘 활용해 생산요소가 해외로 빠져나가던 흐름을 유턴시키고,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는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