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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유가, 140달러 육박 … 직격탄 맞은 한국 산업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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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고유가로 비상경영을 선포한 아시아나항공은 임직원들의 무급휴직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급여 없이 최장 6개월간 쉬는 제도다. 2일부터 휴직 신청을 받아 10일 마감을 코앞에 뒀지만 신청자가 회사 측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회사 관계자는 “인건비를 줄여 보자는 취지였는데 직원들이 해직되는 수순일까봐 찜찜해하는 데다 고유가로 가계 사정이 쪼들려 신청자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2001년 뉴욕 9·11 테러와 2003년 전세계적인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파동 때 각각 100여 명의 무급휴직 신청을 받아 4억여원의 인건비를 줄였다. 회사 측은 “요즘 경영상황이 그때보다 심각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국제 유가가 천정부지로 뛰지만 국내 업계는 속수무책이다. 주요 대기업들은 연초 경영계획을 짤 때 유가가 연평균 80달러(미 서부텍사스유 기준) 안팎일 걸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미 140달러에 육박한 데다 연내 200달러까지 오른다는 비관 전망에 크게 당황하고 있다.

항공·해운·정유 등 원유 값이 수익과 직결되는 업종들은 초상집 분위기이다. 항공업계는 급한 대로 일부 국내외 노선을 중단하는 등 대책을 서두르지만 적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양지환 대신증권 연구위원은 “항공사들은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으면서 적자경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비수익 노선 감축 외에도 2004년 이후 동결된 국제선 항공료를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선박 연료인 벙커C유 값이 전년 대비 65%까지 상승해 해운업계도 곤혹스러워한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우리 선박들은 네덜란드 로테르담과 싱가포르 등지의 유가가 저렴한 곳에서 연료를 넣고 있다. 고유가가 지속되면 기름값에 따라 연동되는 유가할증료 제도를 도입해 인상분을 흡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1월에 컨테이너 한 개에 900달러 하던 유가할증료를 지난달에 1040달러로 올렸다.

정유업계의 고심도 커간다. 주요 회사들이 발표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대비 반토막 난 때문이다. 업계 2위인 GS칼텍스는 232억원의 적자를 냈다. 자동차 업계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연비가 높은 소형차 생산 늘리기에 골몰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내년 말부터 가동될 미국 조지아주 공장의 픽업트럭 생산 계획을 취소했다. 덩치 큰 픽업트럭의 인기가 고유가로 인해 떨어진 때문이다. 대신 쎄라토 급의 소형차를 생산할 예정이다. 기아차도 내년부터 액화석유가스(LPG) 경차 판매가 허용됨에 따라 일정을 앞당겨 내년 1분기에 LPG용 모닝을 출시하기로 했다. GM대우는 내년 말로 계획된 경차 ‘마티즈’의 후속모델 출시를 앞당기려 한다.

유가 급등은 기업들의 경영계획마저 바꿔놓고 있다. 신세계는 올해 매출 11조원,영업이익 8700억원을 목표로 잡았지만 달성이 어려울 걸로 보고 사업부문별 차질 현황을 취합 중이다. 회사 측은 이달 말께 새로운 경영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경영환경 악화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라 ‘매출 드라이브’ 못지 않게 ‘능률 제고’에도 무게를 둘 방침이다. 이 밖에 삼성·LG 등 주요 대기업 집단도 고유가로 인한 경영난을 에너지 등 비용 절감으로 극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이승철 전무는 “고유가가 지속되면 기업들이 신정부 초기 늘려 잡은 투자나 채용 계획을 이행하기 점점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산업현장에서 생산성을 높여 고유가가 소비자 물가 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지훈 수석연구원은 “달러화 약세, 투기자금, 원유 수급 불균형, 중동정세 불안 등 4대 악재가 도사려 고유가는 당분간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경기침체 속에서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리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도록 기업과 정부가 힘을 모을 때”라고 강조했다.

장정훈·문병주·한애란 기자

기름 끊고 전기 켠다
상대적으로 싸 … 1~4월 8.2% 증가

기름값과 가스값이 오르자 상대적으로 싼 전기 사용량이 크게 늘었다. 한국전력공사는 1~4월 전력 판매량이 1343억㎾h로 지난해 같은 기간(1241억㎾h)보다 8.2% 증가했다고 8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1~4월 증가율 3.6%의 두 배에 이른다. 또 올 4월까지 한전의 전력 판매 수입은 10조198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9.4% 늘었다. 부문별로는 교육용(13.9%)·농사용(10.7%)·일반용(10.4%)·산업용(8.1%) 순으로 전기 사용이 많이 늘었다. 교육용 전력은 학교나 도서관·박물관 등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1982년 이후 40%가 인하돼 사용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또 화훼 농가의 온실이나 비닐하우스 재배를 하는 농가에서 비싼 기름 대신 전기를 쓰는 경우가 많아 농사용 전력 판매가 크게 늘었다. 일반용 전력 사용이 증가한 것은 사무실·식당·상가 등에서 난방용 전열기구 사용이 늘었기 때문이다.

전기 요금은 지난해 1월 인상된 이후 정부의 요금 동결 정책으로 가격 변동이 없다. 전기요금은 ㎾h당 77.85원으로 일본(123.84원) 등 선진국에 비해 훨씬 싼 편이다. 그러나 난방용으로 주로 쓰이는 보일러 등유 판매가격은 6월 첫째 주에 L당 1523원으로 지난해 1월의 873원에 비해 74.5% 급등했다.

한전 관계자는 “소비자 입장에선 기름보다 싼 전기를 쓰는 것이지만 상당수의 전력이 기름 같은 고체연료를 사용해 생산된다”며 “국가 전체적인 에너지 효율 면에서 보면 전기 사용이 느는 것이 바람직하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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