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빅3' 고유가에 미끄러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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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미국의 간판 자동차가 바뀌었다. 지난달 미국 시장의 자동차 판매대수를 집계한 결과 일본 혼다의 소형차 ‘시빅’이 5만3299대로 1위 모델에 올랐다. 이는 1991년 10월부터 18년째 월별 1위 자리를 지켜온 포드의 픽업트럭 ‘F시리즈’(4만2973대)를 월등히 제친 것이다. 시빅뿐 아니라 일본 도요타의 ‘코롤라’(5만2826대)와 ‘캠리’(5만1291대), 혼다 ‘어코드’(4만3728대)도 F시리즈 판매를 능가했다.

고유가로 미국 자동차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중대형 자동차의 전통 강자인 미국 완성차 브랜드가 미국 시장에서 위축되는 반면 중소형차 위주의 일본·한국 등 아시아 차 업체들이 약진하고 있다. 미국 내 휘발유 값은 올 들어 31% 급등해 갤런당 4달러(L당 1082원)를 돌파했다.

◇‘빅3’의 위기=지난달 미국에서 팔린 자동차는 140만 대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0.7% 줄었다. 특히 미 빅3(GM·포드·크라이슬러)의 위축이 뚜렷했다. 빅3의 지난달 시장 점유율은 44.4%로 일본차 업체들의 점유율을 합친 것(42.6%)과 불과 2% 격차였다.

여기에 한국차(5.5%)를 보태면 아시아권 차가 미국 본토 차를 눌렀다.

특히 GM은 1908년 창사 이후 100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 시장 점유율이 20% 아래로 추락했다. 2위 도요타(18.4%)와의 격차는 불과 0.7%로 좁혀져 미국 내 판매 1위 자리를 빼앗기는 건 시간문제다. 릭 왜고너 GM 회장은 “트럭 생산공장 4곳을 폐쇄해 반반인 승용차와 트럭 비중을 60대 40으로 바꾸겠다”는 사업재편안을 서둘러 내놓기도 했다.

F시리즈의 판매가 지난해 같은 달보다 30%나 줄어든 포드도 다급해졌다. 포드는 이달 한 달 F시리즈 일반 판매가를 직원 특판가 수준으로 낮추는 파격 할인을 단행했다. 또 사무직을 줄여 인건비 15%를 절감한다는 계획도 5일 내놨다.

◇일본·한국차엔 기회=연비 좋은 일본차는 선전했다. 소형 승용차가 잘 팔린 혼다와 닛산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작은 차에 강점이 있는 일본 스즈키도 판매가 1.7% 늘었다.

반면 도요타는 픽업트럭 ‘툰드라’의 판매가 30% 이상 줄면서 전체 판매도 약간 감소했다. 이에 따라 픽업트럭을 생산하는 미 프린스턴 공장에 중형세단 캠리 라인을 까는 걸 검토 중이다.

일부 유럽업체도 소형차 덕을 봤다. 독일 BMW는 소형차 ‘미니’의 판매가 52% 급증했다. 벤츠도 미국에 새로 출시한 경차 ‘스마트’ 덕분에 마이바흐와 벤츠 판매가 감소한 것을 어느 정도 만회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판매기록을 세웠다. 기아차는 4월에 이어 두 달 신기록을 이었다.

기아차의 안병모 미국법인장은 “고유가로 스펙트라와 옵티마 같은 고연비 차가 잘 팔렸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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