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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봉은 댓글…‘아고라’서 무장…커뮤니티는 거리로

중앙일보

입력

중앙SUNDAY

쇠고기 촛불집회는 온라인-오프라인의 구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네티즌들은 온라인을 통해 촛불집회를 보다가 현장으로 뛰쳐나오고, 현장을 캠코더나 디지털 카메라로 담아 온라인에 올린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집회가 7일 31회째를 넘겼다. 그 사이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고시를 유보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핵심에는 인터넷 세상의 ‘e-공론장(公論場)’이 있다. 네티즌은 어떻게 여론의 흐름을 바꾸었을까.

댓글로 시작된 태풍

시작은 기사 댓글이었다. 인터넷에 뜨는 기사 속보를 보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던 네티즌이 댓글을 통해 공론화에 불을 지핀 것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첫 촛불문화제가 열린 지난달 2일부터 이달 6일까지 하루 중 ‘최다 댓글’ 기사를 찾아 그 흐름을 짚어 봤다.

촛불집회가 이어지면서 4000개 안팎으로 늘어난 기사 댓글이 7000개를 넘어선 것은 지난달 13일. 경찰이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 유포자에 대한 수사를 착수한다는 뉴스였다. 40대와 남성이 이 기사를 많이 봤다. 관심 연령층이 10~20대에서 점차 폭을 넓혀간 것이다.

21일 정부는 미국과의 추가 협의를 통해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을 명문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있었던 22일 댓글은 처음으로 1만 개를 넘겨 1만4952건을 기록했다. 정부 기대와 달리 대부분이 재협상이 아니면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댓글 놀이가 유행한 것도 이때부터. “임신하면 피임약 먹겠다” “불이 나면 소화기 설치하겠다”… 정부 발표를 비꼬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그리고 정부 발표를 풍자하거나 패러디하고, 전문가 글을 발췌해 일반인이 알기 쉽도록 정리한 텍스트가 ‘전단지’ 형식으로 퍼져 나갔다. 네티즌의 대국민 홍보가 본격화한 것이다.

쇠고기 수입 문제가 생활과 밀접하고 피부에 와 닿는 광우병과 직결돼 있다는 점이 여론 확산을 뒷받침했다. 경희대 송경재 학술연구교수는 “광우병은 짧은 글로도 찬성·반대 입장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댓글에 안성맞춤인 이슈”라며 “BBK 사건이나 조류 인플루엔자(AI)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이슈였다면 댓글이 이번 같은 힘을 발휘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고라와 사이버 커뮤니티의 결합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심은 열띤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 중심에는 다음 ‘아고라’가 있었다. 아고라의 자유토론방에는 하루에 수천 개씩 토론 글이 떴다. 시위 현장 속보, 집회 계획, 지원 모금 등에 관한 의견이 초 단위로 올라왔다. 온라인 리서치 기관 ‘매트릭스’에 따르면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고시를 발표한 5월 마지막 주 아고라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는 115만5000명. 다음은 서비스 시작 3년 만에 서버 용량을 세 배로 늘려야 했다.

이 무렵 취미를 공유하는 사이버 커뮤니티들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영화 동호인 모임 ‘DVD 프라임’, 주부 인테리어 카페인 ‘레몬테라스’, 패션에 관심 많은 10~20대 여성 모임인 ‘쌍고’ ‘소울드레서’, 디지털카메라 동호회 ‘slrclub’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DVD 프라임’의 변화를 들여다봤다.

지난달 6일 운영자가 시사게시판을 열어 쇠고기 수입에 대한 토론장을 만든 이후 1800개가 넘는 글이 올라왔다. 초반엔 기자회견, 촛불집회, 언론 보도 등에 관한 개인적 의견이 주로 제시됐다. 방송 토론을 보면서 누군가 의견을 밝히면 댓글이 달리는 비교적 느슨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경찰이 시위자를 연행하기 시작한 25일을 기해 촛불시위가 격화하면서 ‘속보’라는 말머리를 달고 게시 글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26일 57건, 27일 76건, 28일 80건으로 늘기 시작해 30일부터는 100건을 넘겼다. 내용도 ‘경찰과 몸싸움’ ‘폭력진압 영상’ 등으로 급박해졌다. DVD프라임 회원들이 자체 깃발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오프라인의 집회에 참여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네티즌은 이처럼 커뮤니티와 아고라를 오가면서 공동체성을 확인하고 의지를 다져 나갔다. 서울대 이재열(사회학) 교수는 “과거엔 불특정 다수가 서로 연결되기 어려웠는데 아고라가 ‘허브 공항’ 역할을, 크고 작은 커뮤니티들이 ‘지방 공항’ 역할을 하면서 한두 다리만 건너면 연결되는 ‘스몰 월드’(small world)가 됐다”고 했다. “유모차 부대(레몬테라스)와 미니스커트 부대(쌍고)처럼 공통 관심사가 없던 모임들이 공동 대오를 형성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온·오프라인 ‘퓨전 시위’

여기에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사라진 ‘퓨전 시위’가 강력한 엔진 역할을 했다. 일반인이 채널을 만들어 실시간 방송을 할 수 있는 개인 인터넷 방송국 ‘아프리카(www.afreeca.com)’. 최근 1주일간 이곳에서 생중계된 촛불문화제를 본 시청자가 450만 명을 넘어섰다. 대규모 시위가 전개된 1일 하루에만 72만 명이 찾았다. 시청자의 연령대도 다양해지고 있다. 5월 18일 20대 비중이 절반 이상이었으나 1일에는 20대 36%, 30대 30%, 40대 12.5%이었다.

시청자는 시위 현장에서 생중계하는 BJ(Broadcasting Jockey·진행자)들이 보여 주는 화면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방송 창 옆의 채팅 창을 통해 취재 방향과 취재 대상 지역을 지시하기도 한다. 지상파 방송의 뉴스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바로 현장 상황을 알 수 있다. 안방에서 집회에 참가하는 셈이다. 1일 새벽 경찰이 물대포로 시위대를 해산하는 모습이 중계됐을 때는 집에 있던 일부 네티즌이 현장으로 출동하기도 했다.

기발한 시위 방법이 개발된 것도 인터넷에서다. 아고라 토론방 등을 거치며 횡단보도에 녹색 불이 켜질 때 거리를 건너며 구호를 외치는 ‘신호등 촛불시위’가 등장했다. 경찰 불심검문에 대응하는 요령 등 시위 노하우도 주고받는다. 휴대전화 역시 시위에 유용한 장비다.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 덕에 뿔뿔이 흩어진 시위대가 쉽게 한곳에 모일 수 있다.

송경재 교수는 이러한 양상을 ‘스노볼링(snowballing)’ 효과로 요약했다. 작은 눈덩이가 비탈을 내려오면서 크게 불어나는 것처럼 인터넷에서 제기된 이슈가 댓글과 온라인 토론을 통해 확산되고, 다시 오프라인 시위를 통해 재결집한다는 것이다.

반론이 증발되는 ‘쏠림’ 현상이 나타날 우려도 있다. 실제 온라인 토론방에서 반대 의견을 펼라치면 “당신 ‘알바(아르바이트생)’ 아니냐”며 인신 공격을 하기 일쑤다. 송 교수는 “상대방 입장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세대와 이념의 파편화된 공론장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찬성·반대 토론방을 분리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권석천·이원진·이정봉 기자 sc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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