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KBS 제작비 공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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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2006년 12월 KBS에 비상이 걸렸다. 지방총국의 회계 담당 여직원이 5년간 약 10억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직원은 TV수신료 등 회사 돈을 빼돌려 남편의 사업비를 댄 것으로 밝혀졌다. 횡령 규모도 컸지만 KBS가 자본금 전액을 정부가 출자한 공영방송이라는 점에서 국민의 비난 목소리가 높았다.

KBS 측은 “공영방송으로서 환골탈태하겠다”고 사과했지만 이후에도 ‘돈 사고’가 이어졌다. 지난해엔 KBS의 중견기자가 제작비 수백만원을 횡령한 혐의로 파면됐다. 한 해외 지국에선 영수증 증빙이 안 된 채 2만5000달러가 지출된 일도 적발됐다.

이처럼 문제가 지적돼 온 KBS의 방만한 경영을 밝혀내겠다며 한 시민단체가 벌인 법정 투쟁이 2년 만에 승리로 마무리됐다.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공발연)가 KBS의 제작비 등을 공개하라고 낸 정보공개청구 소송에서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것이다.

대법원 3부는 공발연이 KBS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공발연이 소송을 시작한 것은 2006년 5월. “KBS를 진정한 공영방송으로 만들겠다”고 출범한 이 시민단체는 첫 사업으로 KBS의 3년간 제작비와 이사회 의사록 등을 공개하라는 정보 공개 청구를 했다. 김주원 공동대표(변호사)는 “KBS를 제대로 된 공영방송으로 만들기 위해선 그 경영 자료를 국민이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KBS는 정보 공개를 거부했다. “기업의 영업상 비밀이 공개되면 법인의 정당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였다. 공발연은 소송을 제기했다.

공발연이 요구한 정보는 ^3년간 장르별 제작원가 세부 내역 ^외주 제작 내역 ^이사회 의사록이었다. 지난해 1심 법원은 “외주 제작 내역은 공개하라”며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양측이 항소했다. 지난 1월 2심 법원인 서울고법은 공발연이 요구한 세 가지 정보를 모두 공개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제작비 공개가 영업상 비밀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공개한다고 해서 KBS의 업무에 손해나 불이익이 생긴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공영방송은 일반 사기업과 달리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또는 제작에 관한 의사 결정에 국민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KBS는 다시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공발연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공공 기관은 자신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원칙이고 비공개 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주원 대표는 “수신료를 내고 있는 국민이 KBS의 방만한 경영을 지적할 수 있는 첫걸음을 뗀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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