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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복어 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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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대나무 마을 바깥에 복숭아꽃 두 장/ 봄 강물 따스함은 오리가 먼저 알고/ 물쑥은 가득한데 갈대싹은 아직 짧아/ 요즘이 바로 복어가 강으로 오르는 계절.”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시다. 한가로이 복어 낚시를 즐기고 복철이 오기만을 기다린 시인은 요즘 말로 복어 매니어였다. “생명을 걸고 하돈을 먹는다(搏死食河豚)”는 시구까지 남겼다. 하돈은 ‘바다의 돼지’, 즉 복어를 가리킨다.

복어는 ‘담담하면서도 싱겁지 않은(淡而不薄)’ 생선이다. 캐비아(철갑상어의 알)·트뤼프(송로버섯)·푸아그라(거위의 간)와 함께 세계 4대 진미로도 꼽힌다.

일본인도 복어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한다. “복어를 먹지 않는 사람에겐 후지산을 보여주지 말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장미의 가시처럼 복어는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란 독을 품고 있다. 이 독의 독성은 청산가리의 13배다. 『동의보감』엔 “제대로 손질하지 않고 먹으면 죽을 수 있다. 살엔 독이 없으나 간·알엔 독이 많으므로 간·알·등뼈 속의 검은 피를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정확히 기술돼 있다. ‘복어 한마리에 물 서말’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복요리를 할 때 다량의 물로 피를 충분히 씻어내라는 뜻이다.

학계에선 복어독의 유래를 놓고 오래 전부터 설왕설래가 계속돼 왔다. 복어가 스스로 독을 만들어 내느냐, 또는 단순 전달자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최근엔 다른 생물의 독이 먹이사슬을 통해 복어의 체내로 유입됐다는 외인설(外因設)이 지지를 받는다. 양식 복어의 독성이 점차 약해지는 것도 외인설에 힘을 실어준다.

극소수지만 일본엔 복어독에 빠진 사람도 있다. 이들은 근육 이완, 통증 완화, 피로 해소 등을 위해 일부러 복어독을 섭취한다. 이들은 “맹독성인 보툴리눔 독소(식중독 유발)라도 충분히 묽게 하면 훌륭한 주름 개선제(보톡스)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용량이 조금이라도 초과하면 바로 황천행이란 사실은 외면한다. 1975년 유명 가부키 배우가 복어독을 먹다 용량 과다로 숨지는 사건도 있었다. 복어독의 섭취는 비유컨대 6연발 권총에 총알이 5개나 든 ‘변형 러시안 룰렛’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한강성심병원 산업의학과 오상용 교수).

한동안 잊혀졌던 복어독이 요즘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지난달 27일 두 중년 남성이 고속도로 갓길에 정차된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계기였다. 경찰은 이들이 마신 음료에서 미량의 복어 독이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생쥐 머리 이물부터 시작해 광우병·조류 인플루엔자(AI)·유전자 변형(GM) 옥수수에 이어 복어 독까지, 이래저래 올해는 식품 안전 이슈들이 국력을 소진시키고 국민의 진을 다 뺄 모양이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