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내생각은…

미국 쇠고기 ‘재협상’대신‘추가협상’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정부는 쇠고기 수입 안전기준 고시를 유예하고, 미국 측에 재협상 가능 여부를 타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 우리는 기존 합의문의 파기를 선언함으로써 일방적으로 재협상을 선언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국제협정 위반과 통상 분쟁을 야기함은 물론 우리 국익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쇠고기 협상은 지난해 4월 한·미 FTA 협상 타결 시 참여정부가 “국제 기준을 존중해 쇠고기 문제를 합리적 기간 내에 해결”하기로 약속한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면 앞으로 예정된 6자회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개성공단, 이라크 추가 파병,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등 양국 간 첨예한 문제들을 푸는 데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설령 미측이 결국 재협상에 응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을 부정할 수 있는 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30개월 기준을 고집하기 어렵다.

일방적 재협상 선언은 한·미 FTA의 미국 내 비준을 곤란하게 할 것이다. 유력 미 대통령 후보인 오바마 상원의원이 한·미 FTA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방 선언을 하면 미국 정부의 FTA 비준 노력에 찬물을 붓는 일이 된다. 또 미국 내에서 타오르고 있는 FTA 재협상 주장에 기름을 부을 수도 있다.

양국이 기존 합의 내용의 본질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추가적인 안전조치에 합의하는 형식의 ‘추가 협상’을 한 번 더 개최하는 것은 가능하다. 우선 우리가 수입하는 모든 쇠고기에 월령 기준을 표기하도록 미측에 의무지울 수 있다. 이는 현재 한·미 합의서 내용과 충돌되지 않는 추가적 의무사항이므로 추가 협상 형식으로도 가능하다. 그런 다음에 정부는 국내의 모든 쇠고기(한우 포함) 관련 제품 판매자들에게 사용된 쇠고기가 30개월 이상 여부를 표기하도록 의무화하면 된다. 미세한 위험이라도 회피하기를 원하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철저히 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수입산과 국산에 차별을 두지 않는 한 일정한 학교 급식에 30개월 이상의 쇠고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가능하다. 또한 향후 미·일 쇠고기 협상 등의 결과 한·미 기준보다 엄격한 수입 위생조건이 채택되는 경우 이번에 고시하게 될 한·미 수입 안전기준의 개정 협상을 곧바로 진행해 미·일 기준과 유사한 기준으로 변경하는 것에 한·미 양국이 합의할 수도 있다. 미측도 우리와 서둘러 쇠고기 협상을 마무리하길 원하는 중요한 이유가 현재 진행 중인 미·일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이다. 향후 미·일 협상이 종결되면 미·일 협상 결과에 따라 한·미 수입 안전 기준을 재조정하는 것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일본에 비해 우리가 시기적으로는 미국과 일찍 협상을 타결할지라도 향후 개정 협상을 통해 결과적으로 미·일 기준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내용의 수입 안전 기준이 한·미 간에도 적용되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한·미 FTA 비준을 얻어내야 한다. 필요하다면 우리 대통령이 직접 부시 대통령은 물론 오바마 의원에게 서한을 보내거나 미국 내 유력 일간지 기고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무릅쓴 국내 정치적 희생의 의미를 각인시켜야 한다. 우리 18대 국회는 조속히 한·미 FTA 비준에 동의함으로써 쇠고기 합의의 경우와 같이 한·미 FTA의 재협상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는 준엄한 메시지를 미 의회에 전달해야 한다. 비록 당초 정치일정에 맞추어 졸속 추진된 쇠고기 협상일지라도 한반도 안정과 한·미 관계의 발전을 위해 우리가 선택한 길이기에 역사적으로 헛되지 않게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