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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역사'를 淸算하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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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반세기의 현대사에서 우리는「죄악의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세번의 기회를 가졌다.첫번째는 지난 48년 친일파를 단죄하기 위해 반민족특별위원회를 구성했을 때였으며,두번째는 60년 4.
19직후 「반민주인사처벌을 위한 특별법」과 「특별 재판소 및 검찰법」을 제정했을 때였다.그리고 세번째 기회가 바로 87년의6월 항쟁으로 5공의 굴복을 받아낸 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그 세번의 기회를 모두 아무런 성과 없이 흘려보내고 말았다.해방 직후의 친일파 제거는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장악을 위해 친일세력을 제거하기는 커녕 정권의 하수인으로 활용함으로써 물거품이 되었 고,4.19직후의 과거청산작업은 5.16쿠데타에 의해 무산되었다.87년의6월항쟁 역시 반독재세력의 분열과 조직력 부족으로 인해 권위주의 정권을 다시 6년간이나 연장해 주는 결과밖에는 얻지 못했다. 5.18특별법의 제정은 역사가 우리들에게 부여한 네번째의 과거청산 기회다.50년의 현대사는 문자 그대로 신고간난(辛苦艱難)의 연속이었지만 거듭해 청산의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실로 역사의 축복이요 우리도 모르게 성장한 민주 의식이 가져다 준 선물일 것이다.
이번만은 기회를 헛되이 보내선 안된다.절대 다수의 국민과 정부가 뜻을 같이하는 이번 기회에도 과거 청산에 실패한다면 우리세대는 오히려 부끄러운 역사를 확대 재생산했다는 역사의 심판을받을 것이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갑작스런 5.18특별법제정 지시가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많은 억측을 낳게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5.18특별법 제정에 끝내는 동의할 것이라면 12.12를「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던 과거의 방침은 어떻 게 설명할 것이며,더구나 불과 넉달전에「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 아래 검찰이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린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항간에 이번 5.18특별법 제정방침이 비자금정국의 국면전환용은 아닌가,떨어진 인기 만회책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나돌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그러나 金대통령의 정치궤적이나 행동양식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지라도 이 시점에서 국 민들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는 일단 金대통령이 말한 5.18특별법 제정 지를 가감없이 받아들여 과거청산작업에 힘을 모으는 것이다.
『이 나라에 정의와 진실,그리고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군사쿠데타는 비극중의 비극으로 다시는 그런 불행이되풀이돼선 안된다….철두철미하게 진실이 밝혀져야 하며 책임있는사람은 법에 의해 다루어져야 한다.』 이런 金대통령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5,6共 당사자들 외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金대통령의 발언이 「정의와 진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의 추측대로 정략적인 국면돌파용이라 해도 괜찮다.우리들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역사란 자기동력(自己動力)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국민들이 정말로 이번 기회를 제2 건국의 기회로 삼고자한다면 5.18특별법 제정의 의도가 어떠했건 이번 일은 정의와진실을 향해 질주해갈 것이다.
이를 위해 빨리 결론을 내야 할 과제가 세가지 있다고 본다.
첫째는 정부가 사회의 특별검사제 도입요구를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본의는 아니었을는지 모르나 어떻든 결과적으로「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공소권 없음」이란 결론을 내렸던 검찰에 이제와서 재수사를 맡긴다는건 앞뒤가 안맞는 처사이며국민들도 의혹을 풀지 못할 것이다.
두번째는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서둘러 시효논쟁으로 문제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게하는 일이다.4개월씩이나 결정을 미뤄온 헌재가이번과 같은 기회에도 분명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헌재는 존립가치도 없을 것이다.
세번째는 5.18문제에 대해서만은 정부.여당이 독주를 해서는안된다는 점이다.
5.18문제는 결코 정략의 대상이 아니다.그런 이상 야당을 포함한 국민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과거청산의 길이며 세계에 한국형 과거청산의 모델을 제공해주는 길이 될 것이다.
유승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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