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한 연인들 아픈 추억의 '독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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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냉정과 열정 사이’는 엇갈림과 그리움의 쓸쓸한 풍경을 다분히 연극적인 색채로 풀어내고 있다.

요즘 대학로에는 작품이 넘친다. 1994년 이후 10년 만이다. 국립극단 이윤택 예술감독은 "20년대 세계 대공황이 왔을 때도 연극은 성행했다"며 "세계 연극사를 돌아 보면 정치적.경제적 상황이 어두울수록 연극은 활개를 쳤다"고 말했다. 이 예술감독은 "요즘 대학로의 활황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관객은 헷갈린다.'코믹''감동''폭소''강추' 등 현란한 수식어로 무장한 포스터들이 대학로를 '도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열리는 공연만 무려 40편이 넘는다. '섹시한 문구'만 쳐다보다간 "아뿔싸!"하며 알맹이 없는 연극을 고르게 십상이다. 그 와중에 연극 '냉정과 열정 사이'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었다. 어설픈 잔재주는 없었다. 오히려 꽤나 실험적이면서도 연극적이었다. 러시아 유학파인 이항나의 각본은 시적(詩的)이었고, 연출의 밀도는 높았다. 배우들의 연기도 펄떡거리며 무대 위에서 숨을 쉬고 있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원작은 두 권의 일본 소설이다. 한 권은 남자의 관점에서, 또 한 권은 여자의 관점에서 풀어냈다. 물론 하나의 사랑을 놓고서 말이다. 피치못할 오해로 헤어진 두 사람, 준세이와 아오이는 서로를 갈구하며 아픈 현재를 살고 있다.

연극에선 남녀의 관점을 따로 전하기 위해 무대를 반으로 뚝 갈랐다. 그리고 왼쪽에선 준세이를 그리워하는 아오이의 삶이, 오른쪽에선 아오이를 보고파하는 준세이의 생활이 현재형으로 그려진다. 연출가는 두 공간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았다. 준세이가 있을 때도 아오이는 등장했고, 아오이가 있을 때도 준세이는 무대에 서 있었다. 관객은 귀로 아오이의 대사를 들으면서도, 눈으로는 준세이의 슬픔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둘은 단절된 채 서로의 슬픈 배경으로 작용했다.

극적인 효과는 컸다. 쓸쓸함과 그리움의 정서가 '빗줄기'처럼 서로의 무대를 넘나들었다. 때로는 창을 때리는 소낙비처럼 강렬했고, 때로는 뼈 속으로 스미는 부슬비처럼 애잔했다. 관객의 가슴은 어느새 무대에서 흘러내린 '빗물'로 찰랑거렸다.

이런 식이다. 아오이가 "인간이란 잊으려 할수록 더 잊지 못하는 동물이다"라거나 "난 준세이를 헤어진 쌍둥이를 사랑하듯 사랑했다. 아무런 분별도 없이"라는 독백을 던지면 무대 왼쪽의 조명이 꺼진다. 아오이의 슬픔이 암전되는 순간이다. 동시에 오른편 무대에 불이 켜진다. 그리고 흘러나오는 준세이의 대사는 더욱 강한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아오이가 던진 독백의 여운을 딛고서, 그 위로 흐르기 때문이다.

극단 떼아뜨리 노리는 러시아에서 결성됐다. 93년에 뜻이 맞는 유학생들이 꾸렸다. 이 때문에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젊은 극단의 풋풋한 패기와 실험성이 엿보였다. 무대 위로 끌어들인 영상이 그랬다. 예전에도 연극 무대에 영상을 도입한 적은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실험성'을 방패 삼아 어수선한 분위기를 자아내기 일쑤였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달랐다. 영상은 깔끔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연극에 개입했다. 과거를 보여줄 뿐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배우와 직접 대사를 주고 받기도 했다. 작품의 주된 배경인 이탈리아의 현장성을 반영하고, 무대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였다. 동시에 연극적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조심성까지 내비쳤다.

그럼에도 '냉정과 열정 사이'에는 떨치기 힘든 아쉬움이 있다. 원작 소설과 영화에 이은 세번째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연출가는 "오래 전부터 '남녀의 시각차를 다룬 연극을 생각하다 소설을 접하게 됐다"고 말했다.'이 작품이 창작극이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은 지나친 욕심일까. 5월 9일까지 설치극장 정미소, 02-3672-3001.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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