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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노믹스’ 총괄 시스템 고장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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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일요일인 1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어김없이 과천 정부청사로 출근했다. 재정부 간부들도 휴일 출근이 일상화됐다. 3일로 출범 100일을 맞는 이명박 정부의 각 부처에서 공통적인 현상이다. 100일 동안 정부는 휴일을 반납하고 ‘경제 살리기’에 ‘올인’했다.

하지만 국제 유가 상승으로 대외여건이 악화된 데다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으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쇠고기 파문이 확산되고 있지만 다른 각료들과 청와대 수석들은 한 발 물러선 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혼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MB 노믹스에 대한 국민의 기대도 점점 실망감으로 바뀌고 있다.

◇부처 간 정책조정이 없다=지난달 28일 한승수 총리 주재로 열린 ‘고유가 대책 관계장관회의’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해 빈축을 샀다.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강만수 장관,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 원세훈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긴급히 모이긴 했지만 사전에 조율된 게 없었다. 이슈는 유류세 인하, 에너지 바우처 제도 도입, 유가보조금 연장 등 세 가지. 재정이 축나는 만큼 부처 간 사전 조율이 필수적인 사안인데도 설익은 채로 장관회의까지 올라갔다 알맹이 빠진 회의가 된 것이다.

부처 간 입장이 달라 낭패를 보는 사례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재정부는 지난달 11일 서비스수지 개선을 위해 영리 의료법인 허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틀 뒤 김성이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이 “재정부가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절대로 못한다”며 일축했다. 지식경제부가 주도하는 에너지대책도 잦은 혼선의 전형으로 꼽힌다. 지경부는 4월 하순 연비 1등급 차량의 고속도로 통행료와 공영주차장 요금할인 방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얼마 뒤 주무부처인 국토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반대해 없던 일이 됐다.

정부는 정책 혼선을 막고자 강만수 장관이 주재하고 주요 장관들이 참석하는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연다. 그러나 3, 4월 반짝했던 이 회의는 5월엔 아예 열리지 않았다.

◇경제 컨트롤타워 혼선=청와대에선 매주 화요일 거시경제협의회가 열린다. 이른바 ‘서별관 회의’다. 강만수 장관, 김중수 경제수석, 곽승준 국정기획수석,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전광우 금융위원장 등 5명이 고정멤버다. 정부 관계자는 “이 회의에서 주요 현안을 충분히 논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물가에 불을 지른 고환율 정책과 금리정책, 메가뱅크 등을 놓고 각 부처가 대립한 것을 감안하면 이 회의 역시 경제정책의 최종 조정자 역할을 못하고 있다.

당초 정부는 경제 현안은 강 장관, 부처 간 조정은 김 수석, 대운하와 같은 중장기 국책과제는 곽 수석으로 일을 나눴다. 하지만 소신대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의 강 장관은 최근 고환율 정책의 부작용이 드러나면서 말을 아끼고 있다. 김 수석은 처음부터 줄곧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곽 수석이 각 부처 1급 간부가 참여하는 국정과제전략회의를 주재하게 돼 힘이 붙었다. ‘현안-조정-중장기 과제’라는 견제와 균형이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경제정책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장관들과 수석들이 대통령 눈치만 보는 것 같다”며 “대통령이 누가 경제정책 운용을 주도하는지를 명확히 하고,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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