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63> 화려한 프로보다 꾸준한 프로가 위대하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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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26면

송진우

1997년. 박찬호는 LA 다저스의 선발투수였다. 96년에 본격적인 메이저리그 시즌을 시작했고, 97년이 풀타임 선발로는 첫 시즌이었다. 그는 그해 14승8패를 거두며 펄펄 날았고 전 국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해 추석 때 박찬호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한창 시즌 중이라 짬을 내기도 어려웠고, 워낙 인터뷰 요구가 많을 때였다. 그때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한 비결을 위주로 물었다. 그런데 “선수 생활은 언제까지 할 생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가능한 한 오래. 20년’이라고 적었다. 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게 94년이니까 2014년까지 뛰고 싶다는 대답이었다. 그때도, 지금 생각해도 치열한 생존경쟁의 정글 메이저리그에서 20년을 뛴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라고 느껴진다. 박찬호도 대답 뒤에 ‘wish(희망)’라고 덧붙였다. 메이저리그라는 화려한 무대에 올라서기도 힘들지만, 그 무대에서 꾸준히 뛰기란 얼마나 더 힘든 일인가.

국내 프로야구에 꾸준함의 롤 모델이 있다면 단연 송진우(한화)일 것이다. 송진우는 5월 29일 현재 1996개의 삼진을 잡아내 대망의 2000탈삼진에 4개만을 남겨놓고 있다. 2006년 8월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200승을 거뒀고, 2014이닝을 넘어서 3000이닝 투구를 향해 뛰고 있다. 모두 최초의 기록이고 최고의 기록이다. 그래서 그가 가장 자부심을 갖고 있는 숫자라면 그 200(승)-2000(탈삼진)-3000(이닝 투구)이 될 것이다.

송진우가 만 마흔둘(호적 생일 66년 2월생)의 나이에 선발투수로 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대단하다. 그리고 그의 실제 나이가 한 살 더 많고(세광중 1학년 때 전국체전 출전을 위해 65년생을 66년생으로 바꿨다), 동국대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오지 못하고 1년을 실업야구에서 뛴(그는 88년에 졸업했지만 서울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실업야구팀 세일통상으로 갔다) 뒤 동기들보다 1년 늦게 프로에 입단한 걸 알고 나면 더욱 놀랍다. ‘어떻게…’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송진우가 프로에 데뷔한 게 1989년. 올해로 그는 딱 20년째 프로야구 선수로 뛰고 있다. 박찬호가 ‘희망사항’으로 꼽았던 ‘현역 20년’, 그 꿈을 현실로 보여주고 있는 게 바로 송진우다. 송진우가 세운 각종 기록들, 그리고 앞으로 만들어낼 더 위대한 기록들의 바탕은 그가 남들보다 빠른 160㎞의 공을 던진 게 아니라 남들보다 꾸준하게, 20년을 뛰었다는 데 있다. 화려함보다 꾸준함으로 송진우는 기록의 사나이가 됐고, 남들이 갖지 못하는 것을 얻었다.

프로의 세계는 치열하다. 선발투수가 되기 위해, 주전 선수가 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을 벌여야 하고, 그 자리를 얻고 난 뒤 지키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는 ‘한순간 반짝했던’ 선수로 끝나고 만다. 재기는 어렵고 롱런은 더 어렵다.

송진우를 보면서 김동수·전준호(이상 히어로즈)·이종범(KIA)·양준혁(삼성) 등의 꾸준함에도 박수를 보낸다. 그들의 꾸준함은 분명 화려한 것보다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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