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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파’ 미셸 vs ‘현모양처’ 신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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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호 12면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는 대통령만 뽑는 게 아니다. 퍼스트레이디도 뽑는다.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와 민주당 대선 후보가 확실시되는 버락 오바마의 ‘평생 러닝메이트’이자 백악관 안주인 자리를 둘러싼 싸움도 치열하다. “베갯머리 송사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 없다”는 말은 미 대통령에게도 해당한다. 미셸 오바마와 신디 매케인에게 주목하는 이유다.

피부색만큼 스타일 다른 백악관 차기 안주인

미국 유권자들은 기본적으로 현모양처형 퍼스트레이디를 선호한다. 그러나 역대 퍼스트레이디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엘리너 루스벨트는 행동파였다. “세계의 퍼스트레이디”라고도 불린 엘리너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 작업을 한 위원회를 맡아 일하기도 했다.

엘리너 루스벨트

미셸은 행동파 퍼스트레이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못지않은 청중 동원 능력과 장악력을 과시한다. 미셸은 ‘끝내기의 달인’이다. 망설이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남편 쪽으로 끌어당긴다. 특히 오바마가 ‘흑인이냐 아니냐’며 헷갈렸던 흑인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종문제를 피해 다녀야 되는 오바마와 달리 그는 은근히 ‘인종감정’을 자극한다.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미국흑인학을 공부한 그는 “미국 언론은 미국 흑인 공동체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미셸을 ‘나의 반석(盤石)’이라고 부른다. 오바마 부부의 친구들은 미셸이 오바마의 ‘진북(眞北·true north)’이라고 말한다. 어두운 밤 방향을 가리켜주는 북극성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경우 미셸은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퍼스트레이디가 되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라는 언론 매체의 질문에 대해 미셸은 굳게 입을 다문다. 또한 자신에게 최고 우선순위는 어머니·아내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미국 유권자들이 지나치게 설치는 퍼스트레이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신디 매케인은 현모양처형에 가깝다. 유세장에서 남편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나선 다소곳이 앉아 있곤 한다. 정치적 발언을 최대한 회피한다. 신디가 존경하는 퍼스트레이디는 낸시 레이건과 재클린 케네디다. 신디는 거대 맥주유통회사의 회장이지만 자선사업에도 열심이다. 고교 시절 로데오 미인대회에서 퀸으로 선발됐고 대학 때는 치어리더로 활약하는 등 활달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1991년에는 마더 테레사의 요청으로 방글라데시에서 선천성 구개파열(口蓋破裂) 장애가 있는 여아를 입양하는 따뜻한 마음씨도 보여줬다.

79년 당시 24세였던 신디는 나이가 18세 더 많은 매케인을 칵테일 파티에서 만났다. 첫눈에 반한 두 사람은 서로 나이를 속였다. 매케인은 나이를 네 살 낮추고, 신디는 나이를 세 살 올려서 상대방에게 일러줬다. 매케인이 정계에 진출하기까지 장인의 재력은 큰 힘이 됐다. 신디는 남편의 단점도 잘 커버한다. 지난해 5월 한 인터뷰에서 매케인의 불같은 성격에 대해 묻자, “그의 정열을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감쌌다. 신디는 최근 관절염으로 무릎 수술을 했으나 남편의 고된 유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통증 때문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신음한다”고 매케인은 전했다.

아내 덕을 단단히 보고 있는 오바마와 매케인이기에 침이 마르게 부인을 자랑한다. 오바마는 “미셸이 나보다 더 똑똑하고, 강하고, 연설도 더 잘한다. 당내 경쟁 상대가 미셸이 아니라 힐러리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매케인도 유세 중 신디를 소개할 때 “왜 신디가 후보로 나서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며 신디를 치켜세운다.

유권자들에게는 남편의 ‘용납할 수 있는 흉’을 드러내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것도 퍼스트레이디 후보들의 몫이다. 민주·공화 양당 캠프는 이들을 선거전의 ‘비밀 병기’라고 말하곤 한다. 미셸은 “오바마가 침대 시트를 잘 정돈하지 못하고 양말과 속옷을 아무 데나 벗어 놓는다”고 ‘폭로’했다. 신디는 “남편이 운전을 잘 못해 내가 주로 핸들을 잡는다. 남편은 자신이 바비큐(BBQ) 요리의 대가라고 착각한다”고 전했다.

미셸과 신디는 이미 일전을 치렀다. 미셸의 ‘애국심 발언’이 기폭제가 됐다. “나는 어른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미국이 진정으로 자랑스럽다. 국민이 변화를 갈망한다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디는 “나는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영원히 미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없는 말도 만들어 내는 게 선거전이다. 미셸과 신디도 가혹한 검증을 받고 있다. ‘미셸은 애국심이 부족한 게 아닌가’ 하는 대중의 의구심 때문에 도마에 오른다. 애국심보다 흑인 정체성이 더 강한 게 아니냐 하는 문제다. 그가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할 때 쓴 학사 논문은 ‘프린스턴 대학 흑인 졸업생과 흑인 공동체’였다.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당선된 후 미셸(시카고 대학 메디컬센터 부사장)의 연봉이 2004년 12만 달러에서 2005년 32만 달러로 인상된 것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신디는 90년대 초반 약물 중독자였던 전력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그의 재산 내역과 사용처도 언론의 추적 대상이다. 신디는 2006년 세금보고 공개를 회피했다가 집중 포화를 맞았다. 결국 지난달 23일 2006년 세금보고서의 2페이지 요약문을 공개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에이브러햄 링컨과 함께 역대 최고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못지않게 엘리너 루스벨트는 최고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찬사를 듣는다. 반면 역대 대통령 평가에선 중하위권인 남편(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달리 퍼스트레이디 평가에선 상위권을 차지하는 로절린 카터도 있다. 미셸과 신디, 둘 중 한 명이 퍼스트레이디로서 후세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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