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책 읽기] 저무는 팍스 아메리카나 … 미국의 생존법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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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미국 이후의 세계(The Post-American World)
파리드 자카리아 (Fareed Zakaria) 지음
노튼출판사, 292쪽, 25.95 달러

유일의 초강대국이라던 미국이 휘청대는 요즘, 국제질서는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 미국의 국제문제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가 쓴 이 책은 이 같은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내린다.

자카리아는 먼저 지난 500년 동안 국제사회를 변화시킨 원동력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서양의 부흥’과 이 뒤를 이은 ‘미국의 부흥’이다. 과학기술과 경제력을 앞세운 두 세력이 맹주로 군림하면서 전 세계를 재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미국 절대 우위의 질서, 소위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는 썰물처럼 사라지고 있다. 각 산업 분야, 특히 제조업에서의 경쟁력이 약화된 데다 결정적으로 이라크전에 발목을 잡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영향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부실해졌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미국이 약해지면서 생긴 힘의 공백은 어떻게 됐는가. 자카리아는 중국·인도·브라질·러시아·남아공·터키·케냐·인도네시아 등이 이 빈 자리를 메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과거 개발도상국에 머물렀던 국가들이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뤄내면서 새로운 세력으로 자리잡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 사례가 책 여러 곳에서 등장한다. 미국이 단연 앞섰던 분야에서 추월 당했거나 당하고 있는 현실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예컨대 “세계 최고 빌딩은 대만에, 최고 갑부는 멕시코에, 그러고 가장 큰 공장들은 중국에 있으며 금융 중심지는 런던이다” “세계 최대의 도박장은 라스베이거스가 아닌 마카오이며 할리우드의 최다 영화 생산지 자리도 인도의 발리우드(Bollywood; 봄베이+할리우드)에 뺏겼다”고 적고 있다. 더 이상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 아닌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저자는 ‘기타 국가들의 부흥’(the rise of the rest)이라고 표현했다. 이로써 진정한 의미의 전 세계적 발전이 진행됐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2006~2007년 124개국이 4% 이상 성장했는데 이중 30개국이 아프리카”라고 자카리아는 지적했다. 이는 전체 아프리카 국가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규모다. 또 중국은 8년 만에 2배씩 성장하고, 인도는 2040년까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 커나갈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거의 엑스트라가 주연으로 성장하는 신세계에서 미국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저자는 무엇보다 미국이 헤게모니와 힘으로 세상을 주무르려는 생각을 버리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충고한다. 그래야 다른 국가들과 협력하면서 지구상의 각종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파리드 자카리아

인도 출신의 칼럼니스트이자 국제문제 전문가.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땄다. 이후 뉴요커·포린어페어·뉴스위크 등 미국 시사잡지에 칼럼을 쓰면서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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