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구속사태-대통령 수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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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망명.피살.유배.구속.우리나라 전직대통령들의 말로(末路)다.
우리 헌정사의 현주소다.구겨지고 찢긴 우리 근대사다.
광복 50년은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그동안 6명의 대통령이지나갔다.이승만(李承晩).윤보선(尹潽善).박정희(朴正熙).최규하(崔圭夏).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씨가 그들이다.
이승만씨는 한때 「건국의 아버지」로 불렸다.그러나 그를 그렇게 기억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발췌개헌과 사사오입개헌의 장본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그는 12년을 집권했다.그러나 3.15부정선거로 인한 4.19혁명으로 하야해야 했다.
그는 하야후 이화장으로 거처를 옮겼다.그러나 들끓는 여론은 잠들줄 몰랐다.60년5월9일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그로부터20일뒤 그는 전세기편으로 하와이 망명길에 올랐다.
그는 말년에 고국에 돌아오고 싶어했다.그같은 희망을 여러번 피력했다.그러나 끝내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65년 90세의 나이로 호놀룰루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쿠데타로 윤보선정권을 쓰러뜨린 박정희씨는 「근대화의 아버지」로 불렸다.우리나라를 이만큼 만든 주역이다.그러나 그 역시 집권에 눈이 멀었다.3선개헌과 유신은 그를 상징한다.「독재자」란꼬리표가 붙은 그다.
때문에 그 역시 비참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역대 대통령중 가장 비참한 최후였다.그것도 자신의 심복인 김재규(金載圭)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았다.그는 부인(陸英修)마저 괴한의 총탄에 잃어야 했다.
비참한 최후의 원인은 장기집권욕에 있었다.그래서 12.12를통해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씨는 단임정권을 내세웠다.그는 임기를 채운 최초의 단임대통령이었다.
그러나 그를「단임을 실천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그의 단기집권은 퇴임 이후를 걱정케 만들었나 보다.때문에 그와 그의 가족은 돈을 모으는데 혈안이 됐다.단임은 지켰으나 퇴임이후가 비참했다.88년11월23일 그는 재산을 헌납한 뒤 백담사로 들어갔다.全씨의 친구 노태우씨는 87년12월 선거에 의해 당선됐다.6.29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관철시킨 그다.
16년만의 대통령 선거였다.그는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그는 5공과의 차별성 을 강조하고 5공 청산을단행했다.이를 정통성의 기반으로 삼았다.
「물태우」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민주화에 기여했다.지방자치제도 실현했다.그러나 그를 그렇게 평가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돈태우」로 불리는 상황이 됐다.상상을 초월하는 4,000억원 부정축재로 쇠고랑을 찬채 95년11월 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역대 대통령들의 비참한 최후가 여기서 끝났으면 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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