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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역사] 32. 대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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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 이진섭(뒷줄 맨 왼쪽)씨 가족. 뒷줄 가운데가 그의 부인인 소설가 박기원씨.

피란 수도 항구도시 대부산항. 모든 것을 버리고 피란 온 사람들은 빈털터리였다. 내가 유엔군 장교 구락부(클럽) 지배인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부러워하는 눈초리들을 나는 의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진섭(李眞燮)이 들렀다. 국제신보의 기자다.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다자이 오사무(太宰治)의 '사양(斜陽)'이란 소설책을 가져왔다. 맛있는 음식을 만난 기분이었다.

"디그 모어! 디그 모어!(더 파라! 더 파라!) 하던 생각 안 나? 그때 난 담배도 보루로 받고 구두도 새 걸 받고 했는데, 자넨 통 주는 놈이 없다고 투덜댔잖아."

원동(院洞)에서 미 44 기갑사단의 통역 노릇을 할 때 일이다. 중공군이 서울까지 내려왔을 때 미군은 당황했다. 낙동강을 건너오면 최후 방어선을 어디에 긋나. 생각 끝에 삼랑진(三浪津)에서 울산(蔚山)쪽으로 장대한 진지를 구축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모양이다. 인부들을 동원해 참호를 팠다. 그때 구덩이를 더 깊이 파라 더 깊이 파라고 독려하던 말이 '디그 모어'다.

우리가 거기 간 사연이 있다.

부산역 앞에 미군의 레이버오피스(노무처)가 있었다. 구평회(具平會)가 거기서 근무하고 있다기에 찾아갔더니 당장 통역으로 채용해줘 원동으로 갔었다. 미군 하사관이 좀 까불까불했다. 대뜸 내 이름을 묻더니 '잭 한'이라고 했다. 진섭의 이름을 묻더니 '빅 리'라고 했다. 우리는 트럭을 타고 깊숙한 산속을 몇 번이나 답사했다. 엄청난 바위산이었다. 밤이 되면 그 미군은 시가를 물고 껄렁대는데, 진섭은 무슨 요령을 쓰는지 반드시 담배 몇 갑이라도 얻어온다. 나는 그 담배를 얻어 피우는 신세였다.

"어느 때 어느 나라 군대든 비위를 맞춰주면 좋아하는 것 아니냐. 너도 좀 연구해봐."

우리가 텐트를 치고 묵고 있는 곳은 원동초등학교 교정이다. 슬슬 마을로 내려가봤다. 저 아래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어느 주막 같은 집의 마루에 앉아 담배 연기를 훅 뱉는데, 짙게 화장한 색시가 나타났다.

"막걸리 드시려고 오셨어요?"

"아, 여기 미군을 데리고 와도 되나요?"

"그럼요. 놀러오세요."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어느 날 저녁 때 나는 미군을 데리고 갔다.

색시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군은 헤벌쭉 입을 벌리며 좋아했다. 나는 화장실에 간다며 슬슬 아래로 내려갔다. 낙동강을 내려다보며 담배를 연거푸 뻐끔거렸다. 한참 지나 살펴보니 둘 다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미군은 '잭한'을 찾으며 담배도 주고 레이션(휴대 식량)도 주었다.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도 맛있게 읽었다. 진섭은 사르트르의 '구토(嘔吐)'라는 소설도 빌려주었다. 용케 그런 것을 구해오는 친구다.

박인환(朴寅煥)의 시 '세월이 가면'을 샹송조로 작곡한 그의 멋은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그 특유의 재능이었다.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젖어온다.

한운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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