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AA 농구 진출 앞둔 김진수 → 최진수로 자진 등록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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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06년 7월 태릉선수촌에서 남자농구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비지땀을 흘리는 김진수. [중앙포토]

1980년대 농구 코트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김유택(45) 농구 국가대표팀 코치는 젊은 날 어느 팬과 사랑에 빠졌다. 둘은 사랑의 결실도 봤다. 지금 열아홉 살이 된 ‘한국 농구의 희망’ 김진수(미국 사우스켄트고)다. 두 사람은 얼마 후 이혼하고 각각 다른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진수는 어머니가 키웠다. 너무 어릴 때 헤어진 탓에 김유택은 진수에게 농구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나 진수도 농구를 했다. 깡마른 체구와 외모는 딱 김유택이었다. 농구를 하면 할수록 슛 폼과 피벗 동작 등이 생부의 현역 시절을 닮아갔다. 둘의 관계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김진수를 보고 “김유택과 닮았다”는 말을 했다.

진수의 어머니 정모(44)씨와 새 아버지는 진수를 극진하게 키웠다. 진수는 농구를 매우 잘했다. NBA를 목표로 중3 때인 2004년 미국에 갔고, 2006년엔 국내 최연소(17세)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17세는 국가대표 최연소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부모는 아들과 생부의 관계가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새 아버지 최모씨는 “진수가 미국 대학농구에서 성공을 보장받은 다음 과거의 일들이 드러나길 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구 코트는 좁다. 진수의 농구 실력이 매우 뛰어났고 김유택 코치가 한국 농구의 최고 센터였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부터 ‘김진수는 김유택의 아들’이라는 글이 인터넷에 오르기도 했다. 진수가 미국 농구 명문인 메릴랜드대학 입학이 가시화되면서 이 사실은 공론화됐다. <본지 5월 26일자 26면>

진수의 어머니는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고, 특히 “김유택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몹시 서운했던 것 같다. 정씨의 하소연이다. “진수가 100일쯤 됐을 때 김유택씨와 헤어졌다. 이전에도 합숙 등으로 주말에만 들어왔기 때문에 함께 산 날은 열흘 정도다. 지금 아버지는 진수를 13년간 키웠다. 진수 아버지가 몇 년간 술을 끊었었는데 아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얘기를 듣고 소주 5병을 마실 정도로 기뻐했다”고 말했다. 최씨가 진수를 친아들 이상으로 극진하게 키운 것을 농구계는 다 안다.

정씨는 “김유택씨로부터 좋은 유전자를 받은 것은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진수가 이만큼 성공한 것은 진수의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성장한 진수는 김유택이라는 짐을 벗어버리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 같다. 어머니는 “성이 바뀌면 괜히 입방아에 오른다고 말렸는데도 진수는 메릴랜드 대학에 김진수가 아니라 최진수로 선수 등록을 했다”고 말했다.

김유택 코치의 진수에 대한 마음도 절절하다. 그는 진수가 수원 삼일중에 다닐 때 몰래 아이를 보러 경기장에 가곤 했다. 유달리 농구를 잘하는 진수를 보고 “저 아이 농구가 정말 멋지지 않으냐”고 자랑도 했다. 누구라고는 말을 못했다. 김 코치는 최근 진수를 만나 “잘 커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면 진수가 상처를 받을까봐 얼굴을 자주 보지도 못했다”고도 했다. 김 코치는 “진수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 앞으로 코치와 좋은 선수로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NBA가 눈앞에 들어올 정도로 진수가 성공한 것은 김유택을 뛰어넘겠다는 의지와 노력 덕분일 것이다. 이런저런 분노의 벽을 넘어 이제 진수는 김유택이라는 짐을 벗을 때가 됐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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