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 for Money] 경험적 소비를 중시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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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여기 10만원이 있다. 이 돈이면 평소 좋아하던 바나나리퍼블릭 셔츠를 한 벌 살 수 있다. 반면 친구와 둘이서 김동률 콘서트를 갈 수도 있다. 둘 중에 어떤 선택을 할까? 십중팔구 옷을 산다. 옷이 공연에 비해 구체적이고 오래 가기 때문이다.

소비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다. 가지기 위한 소비와 경험하기 위한 소비. 옷이나 보석, 가구, 차 등을 사는 것이 전자다. 반면 맛 집에 들르거나 여행 가는 것, 영화나 공연을 보는 것 등은 후자다.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의 소비 가운데 소유를 위한 소비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뭔가가 확실히 내 것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소유적 소비의 폐해는 이사가는 날 확연해진다. 별 쓸모도 없는 물건을 잔뜩 사들였다는 생각이 절로 들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자발적 단순화 운동( 소유를 줄여 생활을 단순화함으로써 더 자유로워지자는 운동)이 다시 유행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그렇다면 실제로 사람들은 두 가지 소비 유형 가운데 어떤 것에 더 만족할까? 2000년 말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밴 보벤은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프레임』, 최인철, 2007). 두 부류의 소비 가운데 무엇이 더 자신을 행복하게 했나에 대해서였다. 그 결과는 당초의 선택과 크게 달랐다. 경험적 소비의 만족도가 훨씬 높게 나타났다. 이유도 흥미로웠다. 경험적 소비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경험적 소비가 나은데도 소비자들이 소유적 소비에 집착하는 이유는 뭘까? 충동구매나 습관도 있겠지만, 사후 인지 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그럴듯하다. 이 개념은 나중에 알게 된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혼동할 때 활용된다. 역사적으로는 미국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한 사후 인지 사례가 유명하다. 미국 외교사상 최대의 깜짝쇼로 손꼽히는 이 방중 이후 유명 대학원의 정치학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0% 이상이 자신은 이 유례없는 대사건을 사전에 예측했노라고 답했다. 결과를 보고 난 이상 닉슨의 중국 외교는 논리적으로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경험적 소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실제로 소비를 할 때는 소유에 집착한다. 그러나 뒤늦게 경험적 소비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자신은 소유보다는 경험을 더 중시한다고 착각하게 마련이다. 이런 편향성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돈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평을 듣는다. 젊어서 알뜰살뜰 모아 경제적 여유가 생긴 중년 이후를 생각해 보자. 이들은 공연 관람이나 여행은 낭비로 여긴다. 그러면서도 덜컥 비싼 보석이나 가전제품, 그리고 차를 사버린다. 그 때문에 정작 추억할 거리가 없어진 노후에는 제대로 즐길 걸 하고 후회한다.

이런 잘못된 습관을 고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뭔가를 살 때 그것이 꼭 필요한가를 심사숙고하라. 구입하려는 물건이 혼자 한때 즐거운 것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따져 보라. 그 대신 훗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소비는 없는지 생각해 보라. 무엇보다도 심호흡부터 오래도록 한 번 하라. 소비가 달라지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김방희 KBS 1라디오‘시사플러스’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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