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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10만리>8.미얀마 켕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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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켕뚱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탐사팀은 켕뚱시장을 찾아가 봤다.
30~40년전 우리나라의 시골 장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팔고 있는 물건들도 빨랫비누.성냥과 후줄근한 옷가지등.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자취를 감춘지 오래된 고색창연한 물건들뿐이다.그러나 사방 500리 안팎에 하나밖에 없는 시장이어서 규모는 제법컸다. 그러나 시장안 이곳저곳을 살펴본 필자는 색다른 감동을 받았다.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이 모두 자기 민족 고유의 의상을 입고 있었다.타이야이족.라후족.아카족들이 이 땅의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필자는 지금까지 소수 민족들 이 태국이나 중국에서 박해받고 있는 것만 봐오다가 모처럼 그들이 활개치며 사는 모습들이 대견하게 보였다.
그 가운데 시장안을 돌아다니는 탐사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콩나물과 숙주나물.오늘날에도 우리의 밥상에 매일 오르다시피하는 아주 친근한 음식이다.그래서 콩나물과 숙주나물을 미얀마의 내륙 켕뚱시장에서 봤을때 우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콩나물과 숙주나물 다음으로 본 것은 찰밥.켕뚱 사람들도 찹쌀에 붉은 팥을 넣어 찰밥을 지어 먹는다.필자가 시장 바닥에서 찰밥을 팔고있는 아주머니 곁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는데 그 아주머니가 맛보라며 찰밥 한덩이를 건네준다.세계 어 디를 가나 시골 인심은 후해 따뜻한 정감을 느끼게 해준다.
필자는 라후족의 민속을 알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겨 찰밥을 준고마운 라후족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뜻하지 않게 망신을 당한다. 필자가 찰밥 장수 라후족 여인의 가족 상황을 물어보니 먼저번 남편은 전쟁통에 죽고 지금은 시동생과 결혼해 같이 산다고 태연하게 대답한다.필자는 라후족 여인이 참 뻔뻔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만 참지 못하고 그것은 야만 풍속 이라고말해버린 것이다.필자의 말을 들은 라후족 여인의 얼굴색이 변했다. 『그럼,당신네들은 형이 죽으면 어떻게 하지요.』 『형수가다른 남자와 결혼해 살 수는 있습니다.』 『당신네 코리아 사람들은 정말 짐승만도 못하군요.
형이 죽으면 당연히 같은 살붙이하고 살아야지.남에게 보내다니….』 할 말이 없었다.어찌 생각해보면 라후족 여인의 말이 도덕적으로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의 옛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중국 양서(梁書)제이전(諸夷傳)에 따르면 고구려에서도 형이 죽으면 형수를 아내로삼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라후족의 풍습이 고구려의 풍습과 상통하는 점이다.
***다 음날 탐사팀은 켕뚱으로부터 12㎞쯤 떨어져 있는 타이야이족 마을을 찾아갔다.타이야이족의 집들은 모두가 너와집이다.지붕위에 납작한 돌이나 나무껍질을 짜깁기하듯 불규칙하게 얹어놓았다. 탐사팀은 타이야이족 마을에서 줄다리기하는 것을 구경했다.그들은 추석때가 되면 마을의 처녀 총각들이 모여 양편으로 갈라서 성(性)대결을 벌인다.
고사를 지낸다음 마을 어른들이 줄을 만든다.밧줄이 완성되면 밧줄 한가운데 붉은 천을 묶어 표시를 한다.그리고 심판의 엄중한 감시아래 드디어 줄다리기가 시작된다.한동안 줄이 팽팽하다.
왜 그럴까.여자와 남자의 힘을 대등하게 만들기위해 여자의 수를몇명 더 많게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백중하던 타이야이족의 줄다리기는 결국 여자팀의 승리로끝났다.타이야이족들도 우리나라에서처럼 여자쪽이 이겨야만 풍년이든다고 한다.아마도 여자는 수태(受胎)능력을 상징하기 때문일 것이다.특별공연이 끝날 무렵의 불꽃놀이는 일대 장관이었다.
그나저나 탐사팀은 무모하게 켕뚱까지 오긴 왔지만 막상 중국 국경 맹그라까지 갈 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탐사팀은 이판사판으로 미얀마 정부군 사령부를 찾아갔다.탐사팀은 우여곡절끝에 겨우 미얀마 전선을 통과하는 특별허가를 받는데성공했다.그러나 참모장은 탐사팀이 반군지역에서 어떻게 되든 자기네들은 책임질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사 령부에서 특별허가를 받은 날 오후 탐사팀은 켕뚱 근처의 라후족 마을을 찾아 갔다.마을에 들어서니 집집마다 박을 매달아 놓은 것이 보였다.
라후족 교회 목사의 설명인즉 라후족의 맨 첫번째 조상이 박속에서 나왔기 때문이란다.목사의 설명을 들은 탐사팀은 놀랐다.라후족이 우리민족과 같은 난생설화(卵生說話:고구려 시조 주몽,신라시조 박혁거세,김알지,김수로왕이 모두 알이나 금 궤에서 나왔다)를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 켕뚱을 출발한 탐사팀의 지프들은 서쪽의 중국 국경을 향해 고개를 오르기 시작했다.전선이 가까워올수록 주변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비좁은 자갈길로 두서너개의 고개를 넘었을까.켕뚱을 출발한지도 두시간이 거의 다 돼갔다 .탐사팀은 다시 큰 고개를 기어올랐다.이윽고 정상 가까이 올라왔다 싶을 때였다. 『탕,탕,탕…따르르륵.』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차 앞에서 흙먼지가 튀었다.
필자는 엉겁결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순간 주위에 살기가 감돌고 심장이 얼어붙는 것같은 공포가 엄습해왔다.잠시뒤 길 옆 언덕위에서 AK자동소총으로 겨누며 지프를 향해 다가오는 한 떼의군인들이 시야에 들어왔다.탐사대원들이 꼼짝않고 차속에서 숨죽이고 있는데 어느새 총구가 다가오며 거친 영어가 귓가에 들려왔다. 『왜 소리를 질렀는데도 차를 세우지 않은거요?』 『아니… 못… 못들었소.』 『못들었다구?』 사실 그들이 차를 세우라고 외치는 소리를 탐사팀 누구도 듣지 못했다.아마도 창문을 닫고 차창을 통해 주변 풍경을 촬영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그랬을 것이다.정지신호를 무시하고 자동차가 계속 진행하자 마침내 위협사격을 가한 것이다.
아무튼 탐사팀은 하마터면 이름도 모르는 미얀마의 어느 전선에서 목숨을 잃을뻔한 위기를 넘기면서 미얀마 정부군의 마지막 전선을 넘었다.앞에 보이는 것은 우리 휴전선 같은 약 4㎞ 정도의 완충 지대.도로폭이 겨우 지프 한대가 빠져 나 갈 수 있을정도의 돌투성이 길이다.
가파른 고개를 두어개 넘자 미얀마 국기와는 또 다른 모양의 국기가 장대끝에 매달려 펄럭이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구사일생으로 이곳까지 넘어왔는데 반정부군 진지에서는 또 어떤 예기치않은 일이 탐사팀을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탐사팀이 반정부군의 전초기지에 당도하자 예상한대로 여러명의 보초병이 총을 겨누며 차를 에워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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