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파월의 결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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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93년 9월30일 콜린 파월은 35년간의 군대생활을 청산했다.그 직전 실시된 한 여론조사는 『오늘 대통령선거가 실시되고,클린턴과 파월 두사람이 후보라면 누구를 지지하겠는가』라고 물었다.결과는 파월 40%,클린턴 38%였다.파월에 대해 호감을 갖느냐는 질문엔 70%가 그렇다고 답했다.
파월의 일생은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典型)이다.그는 자메이카흑인 이민 아들로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났다.대학 진학때 뉴욕대아닌 뉴욕시립대를 택한 이유는 오직 등록금이 쌌기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학군단(ROTC)을 거쳐 군인이 됐고 그후 출세가도를달려 사상 최연소,흑인 최초의 합참의장이 됐다.또 91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영웅이다.
군인에서 정치가로 변신을 시도했다는 면에서 파월은 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대통령과 비교된다.우선 두사람 모두 전쟁영웅이다.
두사람 모두 인종.계층.성별을 불문하고 폭넓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두사람 모두 워싱턴 정치.관료사회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가지고 예리한 통찰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정치의 흙탕물에 물들지않았다. 「검은 아이크」 파월은 그동안 계속해서 미국정치의 초점이 돼왔다.여론조사에서 가장 유망한 대통령감으로 나타났다.출마선언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그러던 그가 지난 8일 갑자기 불출마를 선언했다.『모든 사람에겐 나름대로 역할이 있다.대 통령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국가에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명언과 함께.
국가에 대한 봉사는 파월의 자서전 『나의 미국여행』에 잘 나타나 있다.『모든 국민은 자연과 운명이 자신에게 부여한 것에 비례해 나라에 바칠 봉사의 빚이 있다』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인용,국가로부터 많은 것을 부여받은 사람으로서 자신은 국가에 언제나 큰 부담을 갖고 있으며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한다. 파월이 불출마 선언을 한 이유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다.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국가에 대한 봉사를 대통령아닌 다른 역할에서 찾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 사건을 겪으면서 똑같이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 군인이 되고 정치가가 된 사람들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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