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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대북정책 180도 바꾼 힐 ‘김정힐’ 로 불리며 매파 설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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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재선 대통령으로 임기를 시작한 2005년 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북한 핵 프로그램을 저지하기 위한 전략회의를 열었다. 회의 중 잠잠하던 크리스토퍼 힐(사진)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장관께서 저를 평양에 보내 주신다면 협상을 성공시키겠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힐은 이렇게 미국의 대북정책 전면에 등장해 대북 강경파였던 부시를 온건파로 180도 바꾼 핵심 인물이 됐다고 워싱턴 포스트(WP) 인터넷판이 2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에 따른 북한 핵 폐기 협상은 부시의 최대 외교적 성과로 떠오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힐이 최악의 성적표를 받을 뻔한 부시의 외교정책을 살렸다는 것이다. 라이스의 지지를 업은 힐은 국무부 내 보수파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대북 협상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미 행정부 안팎에서 보수파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이들은 힐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 빗대 “김정힐”이라며 조롱했다. 힐이 북한과의 대화에 집착해 너무 많은 양보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힐의 영향력은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그는 중간급 관료임에도 딕 체니 부통령, 라이스,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종종 부시와 조찬 모임을 가졌다. 가끔씩 대통령과 독대하기도 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사적 평양 공연에도 힐의 막후 역할이 컸다. 그는 지난해 가을 평양 공양을 탐탁지 않게 여긴 뉴욕 필 연주자들과 피자로 점심을 하며 평양행을 설득했다. 그는 뉴욕 필의 평양 공연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북측 인사가 참석한다는 사실을 들은 라이스가 만류해 뜻을 접었다고 WP는 전했다.

힐은 대북 협상을 통해 언론에 이름이 알려지며 국제적 인물로 부상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해 힐을 “뛰어난 외교관”이라고 치켜세웠다. 반 총장은 “힐은 인내와 협상력으로 냉전의 마지막 유산을 청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힐이 언제까지 보수파의 공격을 견뎌내고, 부시와 라이스를 만족시키면서 북한과 협상을 계속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무부의 고위 관료들은 사석에서 힐의 대북 협상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2006년 북핵 협상 때 협상팀의 차석대표였던 빅터 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국장은 “그는 효율적인 협상가이나, 영웅이 되기 위해 언론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인물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힐은 (테니스 선수) 존 매켄로라 할 수 있다. 뛰어난 재능이 있어 연습하지 않고도 경기에서 이긴다”고 말했다. 당시 NSC 핵 전문가로 일했던 캐롤라인 레디는 “협상팀은 북핵 실험에 대한 모든 제재 조치를 중단하거나 단념하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북핵 협상은 더 이상 협상이 아니다. (당근만 있고) 채찍이 없다”고 비판했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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