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窓>"아름다운 청년,전태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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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4분간 계속 활자만 가득한 화면을 상상해 보라.유명정치인에서탄광광부,퇴직한 아파트 경비원에서 국민학교 학생까지 이름 석자만으로 한데 어울려 있는 장면.
18일 대한극장에서 개봉되는 『아름다운 청년,전태일』은 국내영화사상 처음으로 보통사람들의 후원금을 모아 제작한 작품이다.
영화가 끝나면 이 후원인의 명단이 길게 이어진다.이름만 가득찬화면은 그 자체가 이 영화의 한 장면같다.사회 적 지위와 관계없이 알몸으로 순례에 나선 인간들의 행렬을 연상시킨다.
이 순례행렬이 찾아가는 곳은 25년전 평화시장의 한 뒷골목이다.청년 전태일이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부르짖으며 22세에 분신자살한 곳.여기서 피어오른 조그마한 불꽃은 80년대를 「불의 시대」로 만들었다.
이 기간내내 전태일의 영혼은 시위현장으로,감옥으로,대학의 서클룸으로 「열사」라는 호칭을 달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그러나 영화 『아름다운 청년,전태일』은 열사가 아닌 인간 전태일을 그리는데 초점을 맞춘다.그렇다고 전태일의 생애를 격정적으로 담은 전기영화는 아니다.박광수감독은 역사가와 예술가의 중간지점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전태일의 생애를 수놓은 일상의 미세한 결을 살리면서도 거기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의욕을 보인다.
그래서 영화는 75년 수배중인 지식인 영수(문성근)가 전태일(홍경인)의 평전을 쓰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을 따라 전개된다.
감독의 분신인 영수는 따뜻한 가슴과 역사의식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다.그에게 「운동」은 인간에 대한 사랑과 불의에 대한 분노가 결합한 자연스런 사랑의 양식이어야 한다.
그는 전태일에게서 이 점을 발견한다.버스비를 나누어 여공들에게 풀빵을 사주던 청년이 어떤 이념의 세례도 받지않고 자신의 몸을 불살랐다는 것.그것은 역사와 도덕이 하나로 결합된 순간이다.감독은 이 지점에서 「아름다운 청년」을 만들어 낸다.역사의식을 감싸는 미학적 인간.그것이 박광수감독이 만든 전태일이다.
그는 영화속의 전태일을 통해 격정의 80년대와 혼돈의 90년대를 넘어서는 대안적 인간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마지막 장면에서 전태일 평전을 갖고 가는 평화시장의 젊은 노동자는 바로 전태일이다.죽은 전태일역을 맡은 홍경인이 발랄한 청바지 차림으로 다시 등장해 클로즈업된다.
이 장면은 죽은 오르페의 기타를 치며 아이들이 다시 새로운 오르페로 탄생하는 순간을 그린 『흑인 오르페』의 마지막 장면과흡사하다.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영속적 탄생을 낙관하는 희망에차 있다.전태일의 아름다움 만큼이나 영상이 빼 어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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