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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재무담당 임원들 가시방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기업의 생명줄인 돈을 만지는 재무.경리담당 임원중 상당수의 대기업 임원들은 요즘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기업 수난기마다검찰조사다,세무조사다 해서 곤욕을 치른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회장들이 무더기로 소환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여론의 화살도 전에없이 날카롭기 때문.
소환됐거나 소환될 것으로 보이는 기업의 자금.경리통들은 검찰조사나 세무조사에 대비해 옛날 장부까지 몽땅 꺼내 소명자료를 준비하느라 바빠졌다.
이들은 대개 기업주 측근들로 「실세」인 경우가 많다.
특히 정경유착이 심하거나 정치권에 「해라바기」속성이 강한 기업일수록,개인돈과 기업돈이 잘 구별 안되는 회사일수록 이들의 역할은 크다.
기업주의 손발인 이들이 거들어야 할 일이 많은 까닭이다.따라서 이들은 본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기업의 흥망성쇠와 운명을같이할 정도다.
지난 대선 때 비자금조성으로 말썽이 났던 현대중공업 사태만 해도 그렇다.이로 인해 현대의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과 그룹전체가 어려움을 겪었고 잘 나가던 경리통 최수일사장과 장병수전무도 결국 회사를 떠났다.
수난을 겪고 잘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91년 수서사건을 겪은한보의 자금.회계임원들은 그 후 정태수회장의 「특별신임」을 얻어 특진을 거듭했다.
현재 한보의 김종국(金鍾國).정일기(鄭一基)사장,4일 鄭회장과 함께 검찰로 불려간 주규식(周圭植)전무 등이 그들로 모두 핵심 재무통들.이들은 이번 비자금 사건에서도 닦은 솜씨를 또 쓰게됐다.
91년 수서사건 때 입을 안 열어 鄭회장의 특별신임을 얻었다는 후문이다.원전(原電)수뢰사건에 연루됐던 일부그룹의 자금담당들도 나중에 회사측의 「배려」를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수난사와 자금통들의 개인적 희비가 엇갈리는 단적인 사례들인 셈이다.그렇지만 이들은 남 모를 고민도 많다.
중견그룹의 모 자금담당임원은 『오너 개인돈과 회사돈의 구별이힘든다.사정이 급하면 이돈 저돈 따질 겨를없이 먼저 지출해 놓고 나중에 장부에서 이리저리 꿰맞추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단기간에 급성장한 신예그룹일수록 자금담당들은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이들은 『비자금이 나갈 때 장부 메우기가 가장 곤혹스럽다』고 실토한다.
「잘 되면 공신(功臣),잘못되면 역신(逆臣)」이 되는 기업풍토가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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