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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한자는 상형문자 ? “아무리 따져봐도 표음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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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자의 재발견
이재황 지음, 뉴런, 492쪽, 2만2000원

요즘 한자능력시험이다 뭐다 해서 한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이에 따라 한자 학습서는 물론 한자 관련 교양서도 넘쳐나고 있다. 한 가지 두드러지는 것은 이들 책의 대부분이 ‘한자를 만든 원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자를 이해하는 기본이기도 하지만 한자를 쉽게 익히게 하는 학습효과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원(字源)에 대한 엉터리 해석이 난무하는 게 현실이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저자들만의 자의적 추측이거나 갑골문 발견 이후 나온 학문적 성과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동쪽을 가리키는 ‘東’자의 경우 갑골문 연구를 통해 이미 ‘자루묶음’이란 게 통설이 된지 오래건만 아직도 ‘日+木’으로 보고 ‘나무 위로 해가 떠오르는 형상’이라고 해석하는 식이다. 바로 이 같은 현실이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저자는 이 같은 오류는 한나라 때 허신(許愼)이 『설문해자』에서 제시한 육서이론(六書理論)을 그대로 답습하는 데서 오는 것으로 보고 가차 없이 비판한다. 육서이론이란 한자가 상형(象形), 지사(指事), 회의(會意), 형성(形聲), 가차(假借), 전주(轉注)라는 여섯 가지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인데 저자는 한자가 만들어질 당시에 무슨 원칙이 있었느냐며 조목조목 통박한다.

특히 그는 현재 상형자로 설명되는 글자의 10% 정도만 진짜 상형자이고 나머지는 ‘의미+발음’구조로 된 합성자라며 따라서 “한자는 표음문자”라고 주장한다. 600여 자를 발음과 옛 글자꼴의 근접성, 다른 글자와의 관계 등을 중점 추적한 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志’자의 경우 발음부호는 ‘之’의 변환형태인 ‘士’이고 ‘之’는 다시 발의 모습인 ‘止’에 ‘一’을 붙인 글자가 변한 것인 고로 ‘志’자를 ‘선비의 마음’운운하는 것은 한낱 말장난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한자를 제대로 분석하려면 그 유래를 입증할 수 있는 좀 더 직접적인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것이 바로 각각의 글자에 정확하게 매여 있는 발음”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한자학 전공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한자학계의 통념이 아니라 ‘일반상식’을 판단의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龍’은 상상의 동물인 용을 상형한 것이란 기존 주장에 대해 “눈에 보이는 것도 특징을 제대로 잡아 그리기가 어려운 판에 저마다 달리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상 속의 동물을 그려서 남들과 의사 소통하는 건 꽤나 무리”라고 반박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이만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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