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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미터법에 얽힌 과학계 추악한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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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만물의 척도
켄 애들러 지음, 임재서 옮김
사이언스 북스, 600쪽, 2만 5000원

1999년 9월 미국이 발사한 화성 기후 탐사선이 예정보다 낮은 각도로 비행하는 바람에 화성 대기권과의 마찰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의 원인은 어이없는 것이었다. 탐사선을 제작한 록히드 마틴사는 미국의 전통 도량법인 야드-파운드법을 사용한 반면, 미 항공우주국은 미터법을 이용한 것이다. 그 결과 90㎞의 궤도 오차가 생겼고 1억2500만달러(약 1200억원)의 돈이 우주공간 속에 사라졌다. 오늘날 미터법을 전면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 등 3개국 뿐이다.

미터법은 1790년대 초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의해 추진됐다. 핵심은 길이 단위였다. 1g은 물 1㎤의 무게로 정하면 되니까. 아카데미는 ‘북극에서 적도까지 지구 자오선 길이의 1000만분의 1’을 새로운 단위, m로 정하기로 결정했다. 아카데미는 두 명의 대표적 천문학자를 파리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파견해 자오선의 길이를 재도록 한다. 두 학자가 1792~99년에 걸쳐 관측한 결과를 토대로 99년 프랑스는 미터를 국가표준으로 하겠다는 법령을 공포한다.

기술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는 측정을 맡은 두 천문학자의 행보를 중심으로 미터법이 제정되는 역사의 이면을 들춘다.

자신의 업적을 완전하고 영원한 것으로 하기위해 편집증적인 노력을 하다 결국 데이터를 조작하는 샛길로 빠지게 된 메솅, 그리고 동료의 오류를 정확하게 찾아내고 원인을 치밀하게 분석했으며 해결책을 찾기위해 역량을 총동원한 들랑브르의 행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메솅의 조작은 결과(관측의 평균값)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오차를 다루는 새로운 확률론적 방법이 발전했다. 책은 당시 프랑스 과학계의 속살도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위대한 학자 라부아지에와 콩도르세, 과학과 이성의 승리의 상징인 미터법을 지키기 위해 한때 제자였던 나폴레옹에게 허리를 굽히며 애걸했던 라플라스 등의 삶과 활동이 그렇다.

조현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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