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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新인간>6.극단 신주쿠양산박 김수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눈물이 정말 많은 사람은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가슴 속에선 눈물이 넘쳐 홍수를 이루더라도 어금니를 꽉 깨물고 댐을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대신 가슴은 끝없이 부풀어 터진다.
일본 언더그라운드 연극계의 「기린아」김수진(金守珍.41)씨도이런 부류의 사람이다.「재일(在日)」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가슴속으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고등학교때까지 저는 싸움꾼이었죠.초등학교때부터 고등학교때까지 주조(十條)에 있는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녔는데 우릴 이방인 취급하는 일본애들의 눈길이 그렇게 싫더라고요.그래서 가라테(空手)를 배워 2단까지 따기도 했어요.』 재일한 국인으로태어난 그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찾는데 참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내가 연극인이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아버지는 내가 기술자가 돼 통일조국에서 살기를 바랐어요.도카이(東海)대학 전자공학부에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긴자(銀座)세존극장 앞에 있는 찻집에서 점심 때 기자와 만난 그는 다소 상기된 듯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40대초반의 연극인치곤 훨씬어려보였다.얼굴만 앳되어 보이는게 아니라 몸 전체,행동 하나하나에서 풍기는 인상이 생기가 넘쳐 흘렀다.
『내가 연극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대학 4학년때였죠.전자공학부에서 기계만 만지다 우연히 김지하(金芝河)씨의 책을 읽게 됐는데 정말 재미있어 「불귀(不歸)」「금관의 예수」「진혼귀(鎭魂鬼)」「오적(五賊)」등 닥치는대로 읽었어요.그때 갑자기 연극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뭡니까.』 마치 센 자석에 끌린 못처럼 김지하의 문학적 매력에 끌린 나머지 연극이란 새 인생에도전하게 된 것이다.
『연극을 하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지만 소질에 대한 불안감이 사실 이만저만이 아니었어요.』 며칠간 고민 끝에 당대 일본 연극의 대가인 니나가와 유키오(권川幸雄.60)를 무작정 찾았다.
그에게서 3년간 연기수업을 받은 그는 이어 가라 주로 (唐十郎.55)가 운영하는 극단 「레드(아카)텐트」(본지 7월23일자48면「지구촌 이색 문화공간」서 소개)에 입단,본격적인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이 극단에서 10년간 연기경험을 쌓은 후 독립을 결심한 그는87년 6월 재일동포.일본인 배우 등 20명과 힘을 합쳐 지금의 「신주쿠(新宿)양산박(梁山泊)」을 창단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에도 날고뛰는 연극인들이 많다.그럼에도 재일동포인 金씨가창단한 신주쿠양산박이 예상밖의 주목을 받는다.재일동포지만 한국인만의 정서가 담긴 연극을 고집하지 않기 때문이다.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들에게 박수받을 수 있는 연극,그렇지만 한국인의 정신이 흐르는 연극,신주쿠양산박의 성공비결은 여기에 있었다.
신주쿠양산박의 첫 작품으로 야쿠자(일본의 조직폭력단)사회의 항쟁을 생생하게 묘사한 『파인애플폭탄』을 신호탄으로 그 뒤에 나온 『인어전설』이나 『천년의 고독』등은 재일동포들의 애환을 다루면서도 일본인들의 마음을 감동시킨 대표적인 작 품으로 꼽힌다.좌절과 실망이 거듭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거둔 값진 수확들이었다. 신주쿠양산박은 「텐트연극」이란 독특한 장르로 인기를 끌고 있다.89년10월 한국공연(이때 『천년의 고독』을 공연)을시작으로 독일.중국.프랑스.필리핀 등 세계 곳곳을 돌며 갈채를받기도 했다.金씨는 내년에 미국 20개 도시를 순회 하며 공연할 계획이어서 어느때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잃어버린 자신을 찾기 위해 연극을 시작한 그는 이제 자신이 일본땅에서 태어나 일본인들과 함께 살아가야하는 재일한국인임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연극인으로서 한국인의 정신을 일본인들에게 자랑스럽게 연출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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