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63년 당시 朴정권 부패보고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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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워싱턴=연합]『한국인의 생활패턴을 척결하려는(군사정권의)격렬한 시도는 예상대로 대부분 실패했다.폐쇄됐던 요정들이 다시 문을 열고 군정과 중앙정보부 인사들이 이곳의 최고단골이 됐다.
』 주한 미국대사관이 지난 63년2월 박정희(朴正熙)정권의 비자금조성 내막을 본국 정부에 보고한 비밀보고서가 미당국의 정보공개원칙에 따라 올해 초 공개됐다.
A4용지 13장 분량의 이 보고서(미국무부 문서번호A-640)는 당시 미대사관 필립 하비브 정무참사관이 작성한 것으로 『한국의 부패문제』란 제목으로 63년 2월20일 작성됐다.이 보고서는 「부패의 부활」이란 장에서 요정의 부활을 소개한뒤 『김종필(金鍾泌)중앙정보부장은 이런 곳에서 1주일에 당시 6인가족40가구의 1개월치 생활비에 해당하는 약 4,000달러를 쓰는것으로 전해진다』고 밝혔다.이어 『김종필과 그의 사람들은 액수에 관계 없이 돈을 쓰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보고서는 또 『62년 2월부터 5월까지의 주가파동은 중앙정보부의 부추김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62년 증권파동을 분석한뒤 『이 파동을 통해 중앙정보부및 이와 연계된 세력은 약 3,000만달러(당시 쌀 72만가마에 해당)의 이득을 취한 것으로추산된다』고 분석했다.
당시 국무부외에 중앙정보국.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공보원(USIA)및 국방부등에도 배포된 것으로 돼있는 이 보고서는「부패의 새로운 성격」이란 부분에서 『부패가 다른 형태로.다른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있음이 여전히 분명하다』고 쿠데타 세력의 부패구조를 결론짓고 있다.
군사정권이 전처럼 관대민(官對民)이라는 전체 네크워크를 쥐어짜는 대신 보다 횟수가 줄기는 했으나 스케일이 큰 공작들을 통해 비자금(Unbudgeted Funds)을 확보하는 새로운 방법을 고안했다는 것.이와관련,자민련 김종필총재는 1일 『당시미국무부 관계자들이 국내의 음해성 소문들을 그대로 보고한 것일뿐 사실과 전혀 다르다』고 부인했다고 구창림(具昌林)대변인이 전했다. 구대변인은 이 문건에 대해 김총재와 상의한뒤 『당시 미국은 5.16 자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며 김총재 뜻을 전했다. 다음은 이 보고서의 주요내용.
군사혁명이 난후 몇달간은 경제계의 부패가 급격히 없어지기는 했다.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부패의 행태가 점차 부활됐다. 중정은 자금을 축적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활용하는 한편 통제.압력및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그리고 고도로 조직된계획을 실행해왔다.
62년 2월부터 5월까지의 주가파동은 중앙정보부의 부추김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이것이 한국 역사상 발생한 단일한 재정 쿠데타(Financial Coup)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중정이 관여한 워커 센터(워커힐)건설에 약 500만달러상당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진다.중정은 이밖에도 현재 서울에 건설되고 있는 대단위 APACL 프리덤 센터에도 관여하고 있다.
새나라자동차회사는 정보부의 밀접한 대일 비즈니스와 연 계돼 세워졌다.중정은 처음 택시 250대를 일본으로부터 특혜 수입했다.이들 택시는 한달에 12만달러 상당을 벌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비자금과 관련해)빈번히 제기되는 의문은 이 풍부한 비자금이 개인의 호주머니로 흘러 들어갔는지 ,아니면 긴급을 요하는 국가적 목적들을 위해 쓰였느냐는 것이다.김종필과 그의 동료들은 후자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확인되지않은 바에따르면 金은(조작된)증권시장을 통해 개인적으로 거금 약 75만달러란 이익을 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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