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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애니메이션의 힘 스토리에서 나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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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요? 저는 항상 다음에 할 작품이라고 말합니다.” 흰 머리의 거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을 “가슴에서 나오는 열정과 에너지 때문에 (작품 활동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2008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SICAF)’ 참석차 20일 내한한 이탈리아의 거장 애니메이터 브루노 보제토(70)다. 1958년 ‘타품! 무기 이야기’라는 단편으로 데뷔한 그는 76년 디즈니의 ‘판타지아’를 익살스럽게 풍자한 장편 ‘알레그로 논 트로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유리 놀슈타인(러시아), 르네 랄루(프랑스), 프레데릭 벡(캐나다) 등과 함께 세계 4대 애니메이터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홈페이지(www.bozzetto.com )를 통해 신작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21∼25일 열리는 SICAF에는 ‘브루노 보제토 회고전’이 마련됐다. 서울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장편 ‘알레그로 논 트로포’와 ‘로(사진)’등 단편 12편이 상영된다 . 그는 ‘알레그로 논 트로포’ 얘기를 꺼내자 “30년도 더 된 작품이라 이제 그만 ‘차오(ciao·이탈리아어로 안녕)!’를 외치고 싶다”며 웃었다. 보제토는 열 살 때 ‘판타지아’에 미쳐 극장에서 열두 번이나 관람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게 된 것도 이 작품 덕이다. ‘디즈니식 해피엔딩’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던 탓에 세간에는 ‘안티 디즈니의 대표주자’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수식어에 대해 그는 “오히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대한 찬사를 표한 것”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그의 꿈은 원래 영화감독이었다. “실사영화는 배우 섭외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습니다(웃음). 애니메이션은 이야기를 가장 쉽고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최근에는 만들기 쉬운 플래시 애니메이션에 빠져 있지요.” 이탈리아 애니메이션에 대해 묻자 그는 “아직까지도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고, 젊은 층은 국산보다는 미국이나 일본 작품을 선호해 좀 아쉽다”고 말했다.

평소 신문 기사에서 작품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도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야기의 힘’을 강조했다. “저는 지금도 작업시간 중 90%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쓰고, 10%를 그림 그리는 데 씁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을 보면 화려한 스펙터클을 만드는 데 90%를 쓰는 것 같아요.”

네 명의 자녀 중 둘은 아버지를 따라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일본 ‘아니메’에 푹 빠진 자녀들은 가끔 “아버지 작품은 너무 진지하다”는 불평을 한다고 말했다.

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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