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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10만리>7.雲南省 景洪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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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쿤밍(昆明)에서 4일 휴식한 탐사팀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쿤밍에서 추슝(楚雄).다리(大理)로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 다리에서부터 윈난(雲南)성 서쪽으로 빠지는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이다. 다리까지 간 탐사팀은 다시 융핑(永平)을 향해 갔다.
계곡 사이로 난 비포장길은 계속 내리막.해발 2,000의 다리고원에서 거진 1,000는 내려왔을성 싶은데 길은 끝간데 없이 계속됐다.도중에는 아예 촌락도 없고 고작해야 산비탈을 의지해 지어놓은 집 서너채가 전부였다.
또 도중에는 낙석(落石)이 길을 막아 미니버스가 어렵게 빠져나가야만 하는 경우도 겪었다.이렇게 3시간쯤 갔을까,이윽고 조금 트인 곳이 나오고 시골읍 크기의 도시가 나타났다.이곳이 바로 융핑이라는 곳이다.탐사팀은 융핑에서 점심을 먹 은 뒤 다시출발했다.1시간쯤 전진했으나 산골길은 여전히 험하기만 했다.
***메콩강과 세번째 조우 『큰 나라에서는 정말 못살겠어.』장정룡 강릉대교수가 모처럼 입을 열었다.
『어디를 가나 끝나는 데가 있어야지….』 하기는 가도가도 끝이 없으니 탐사대원들 입에서 이런 불평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탐사팀을 태운 미니버스가 드디어 수백척의 절벽같은 가파른 경사를 구불구불 내려가 깊은 협곡 안으로 들어갔다.협곡 양편으로는 거대한 산봉우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었다.주위가 장엄해 사람의 시선을 압도했다.
그런데 아,바로 협곡 밑으로 뱀처럼 구불구불 흐르는 것이 보였다. 메콩강이었다.탐사대원들은 모두 깊은 감회에 젖었다.탐사팀은 칭하이(靑海)성 고원에서 메콩강의 시원을 본 후 티베트와윈난성의 접경인 삼강병류에서 다시 메콩강과 만났고,이곳에서 세번째로 만난 셈이었다.마치 헤어진 후 오랜만에 만나는 친자식처럼 반갑고 대견스러웠다.메콩강은 예상대로 다른 강과는 달리 천험(天險)의 땅을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탐사팀은 이곳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메콩강을따라 내려가야 했다.그러나 현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이곳까지 어렵게 찾아온 탐사팀의 죽음을 의미했다.노호하는 물살이 만든 소용돌이속에 빠져들어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지 못하거나 물밑에 무수히 잠복해 있는 바윗돌에 부딪쳐 으깨져 죽을 수도 있다고 했다.
미니버스가 협곡 밑으로 내려가 메콩강물에 닿자마자 모두들 기다렸다는듯 버스에서 내려 물가로 내려갔다.탐사팀 모두 물빛이 혼탁한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물을 어루만지며 손발을 씻고 얼굴도 씻었다.마치 자기네들이 칭하이성 시원에서부터 키운 자식을 오랜만에 다시 만난 것처럼 한동안 강가에서 떠날 줄 몰랐다.
탐사팀은 메콩강과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바오산(保山).란창(欄滄)을 거쳐 징훙(景洪)으로 향했다.
징훙은 중국 서남부의 최남단 도시.징훙은 십송파나(西雙版納)로 더 알려진 황금의 삼각지대 초입이다.메콩강이 이곳에서 중국구간을 끝내고 드디어 미얀마와 라오스의 국경을 가르며 흘러내리는 지점이기도 하다.
징훙 일대는 야생벼(野生稻)가 자라고 있다.어쩌면 이곳의 야생벼가 우리나라 쌀의 시조(始祖)일 가능성이 있어 탐사팀은 뿌리찾기 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우리가 궁금한 것은 이 쌀농사가 어디에서부터 어디를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왔느냐는 것이다.옛 기록을 살펴보면 중국에서 중원(中原)이라고 부르는 황하 유역 사람들이 쌀이라는 것이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을 때 우리 조상들은 이미 벼를 재배해 주식으로 삼고 있었다.바로 무문토기(無紋土器)시절인 4,000여년 전 우리 조상들은 쌀농사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낱말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의 쌀농사가 어디서 왔느냐에대한 명백한 해답을 얻게 된다.
〈별표참조〉 우리나라 쌀농사는 인도에서 동남아를 거쳐왔다.그래도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고집하는 학자가 있다면 필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필자가 최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도에서 우리나라로 오는 징검다리인 인도네시아 자바섬 사람들이 우리가 주식으로 하는 자포니카 타입의 쌀을 먹고 있었다.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쌀이 인도에서 인도네시아와 윈난성을 거쳐 우리나라에 ■을 가 능성이 더욱짙어진다.
***강따라 내려갈 계획 포기 다음날 중국 구간의 마지막 지점에 와 있는 탐사팀에게 억장이 무너지는 비보가 전해졌다.
『메콩강 통행불가』.
탐사팀은 당연히 메콩강을 따라 내려가려고 계획하고 있었다.이제 메콩강도 조그마한 배가 운항할만큼 성장해 있는 이상 다시는메콩강과 헤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 모두의 생각이었다.
***『미 얀마로 돌아갑시다.』 탐사팀 모두 필자의 갑작스런제안에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래진다.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오랫동안 문명과 단절된 채 버려져 있는 미지의 땅 미얀마의 동북부를 뚫고 우회해 목적지인 황금의 삼각지대로 가자는 필자의 제안이 정상인의 발상일 수는 없었다.그러나 당시 탐사팀은 다른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얼마쯤 달렸을까.조그만 다리를 사이에 두고 중국측의 마지막 검문소 건물이 보이고 붉은색 깃발이 게양대 위에서 나풀거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탐사대원 모두 다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러나 중국측 검문소 다리 건너에 당연히 있어야 할 미얀마측 검문소는 눈에 띄지 않았다.
『괜찮을거야.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필자는 애써 탐사대원들을 안심시키려 했다.
다음날 아침 탐사팀은 반군측과 교섭했다.
그러나 반군측의 말은 설득적이어서 탐사팀을 침묵케 했다.반정부군 맹그라지역 대대장의 설명인즉 자기네들은 탐사팀을 통과시켜줄 수 있지만 상대편인 정부군 진지에 접근하면 사격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리하여 탐사팀은 머나먼 길을 우회해 태국의 최북단 메사이 국경의 다리를 건너 미얀마 땅으로 다시 들어가는 일생 일대의 모험을 하게 됐다.
외국인의 발길을 거부하는 금단의 지대 미얀마의 동북부를 겁도없이.맹그라에서 철수한 1주일 후.
***금단의 땅 미얀마 밟아 탐사팀은 미얀마 샨주의 남쪽 국경도시 타킬렉에서 정부 관리를 끈질기게 설득해 샨주의 도청소재지 켕뚱까지 들어가는 특별허가를 받아냈다.켕뚱에서 중국 국경 맹그라까지의 통과는 일단 켕뚱에 가서 또 해결할 일이었다.당시탐사팀에게는 어 떻게든 미얀마 동북부를 관통해 중국으로부터 시작한 탐사로가 도중에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나갈 수 있게 하는것만이 지상목표였다.
미얀마의 첫 인상은 시간이 오랫동안 멈춰버린 바로 그런 땅이었다.오랜 폐쇄정책과 내전으로 인해 문명과 문화가 퇴보해버려 옛날로 되돌아가 있었다.
타킬렉에서 켕뚱까지는 160㎞.자동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9시간이 넘게 걸렸다.자동차의 평균시속이 20㎞라면 도로사정이 어떤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이라기보다 차라리 비좁은 돌밭이라 해야 옳다.아무리 좋은 차라고 해도 창자가 뒤틀릴 정도로 뛴다.
그런 길을 가도가도 끝이 없이 가야 한다.새 자동차를 타고 갔다 오면 금방 고물차가 돼버린다.그래서 미얀마를 간다고 하면하루에 20만원씩 준다고 해도 차를 빌려주는 사람이 없다.
탐사팀은 아침에 타킬렉을 출발해 어둠이 내리고서야 켕뚱에 도착했다.켕뚱 입구에 다다른 탐사팀은 다시 한번 으스스한 기분을느꼈다.인구 7만명이나 되는 도시가 온통 암흑속에 죽어있다.마치 오래전 해저에 가라앉은 공룡의 시체처럼….
아무튼 켕뚱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기묘한 색깔의도시였다.그래서 서양사람이나 일본의 탐험가들이 간혹가다 한번씩찾아올 뿐 세상사람들로부터 오래전에 잊혀진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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