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일본인과 에로스" 서현섭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게이샤.남녀혼욕.사촌간 결혼풍습….이런 일본의 이미지들을 떠올리면 일본인들의 성생활이 아주 문란할 것같다.그러나 이는 문화의 차이에서 생기는 오해지 열린 마음으로 대하면 그것은 그들의 생활일 뿐이다.
일본의 신화.전설 등에 나타나는 성.성기 숭배사상.유곽.매춘의 역사등 성풍속을 통해 일본인들의 실체에 접근을 시도한 책 『일본인과 에로스』(고려원 刊)가 출간됐다.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인 저자 서현섭(51)씨는 지난해 말 일본사회를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한 『일본은 있다』로 당시의 「일본때리기」 열기를 식혔던 주인공.
『그 책은 정작 본인이 주요 독자층으로 잡았던 20대 초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는데 실패했어요.이 책도 성풍속으로 포장했을뿐 메시지는 「일본은 있다」와 같은 맥락입니다.일본인들의 남녀관계를 빌려 일본이해를 높이려고 했어요.』 일본인의 경우 지금과 달리 신화 등에서는 성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생활의 표현이자 생산력의 원천으로 통했다.심지어 시집가는 딸에게 혼수감으로 「마쿠라에(枕繪)」라는 춘화를 마련해줬는데 그것도 성을 신성시하는 풍습의 하나였 다.
서씨는 『해체신서』등 일본 문헌 100여권을 연구하면서 일본인들의 호기심과 무엇이든 배우려드는 자세,기록성에 새삼 놀랐다고 한다.여자 성기를 표현하는 단어가 무려 300개나 된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것만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 괴짜」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는 사실은 놀랍다못해 두렵기까지 했다고 한다.일본사회의 원동력은 바로 그런 「괴짜」한테서 나온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처녀성이란 단어도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진어휘라고 한다.220여년 전에 스기다 겐바쿠라는 한의사가 네덜란드의 인체해부학서를 번역한 『해체신서』에서 처음 사용했다는 것. 일본인들의 철저한 시간관념을 보여주는 성풍속도도 있다.유곽에서 즐겨 쓰였던 「향시계」가 그것이다.시계가 없던 시절 유곽에 손님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때는 향을 피워 차례를 지켰다고한다.15~20분 정도 지나 향이 다 타면 손님을 바꾸었다는 것이다.산업화 이후 현재까지 일본의 상징으로 통하는 정밀도.철저함들이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일본은 춘화의 덕을 본 나라다.일본 춘화가 서구에 처음 전해지던 당시 서구인들은 성을 예술로까지 승화시키는 일본인들의 능력에 찬탄을 금치 못했다.반 고흐 등 유럽화가의 그림에도 일본춘화의 영향이 엿보인다.새뮤얼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저서에서 일본문화권을 별도문화권으로 잡았던 것도 그런 영향이 아직도 내려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다.
일본은 40년 주기로 사회변화를 보여왔다.명치유신-노일전쟁-2차세계대전 패전-나카소네의 신사참배 등이 그런 변화의 극을 말해주는 사건들이다.
『우리는 1,000년전의 역사 때문에 일본에 대해 지금도 우월감을 느끼고 있지만 늘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일본인들에게는이미 잊어버린 기록일 뿐입니다.그러나 앞으로 우리가 더 유리할지도 모릅니다.다가올 세기는 개성과 창의력이 강 조될텐데 일본은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뒤져요.종군위안부등 과거의 가해문제를못풀고 있는 것도 일본의 약점입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