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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푼 홍콩, 확 치고 나갈 때 인프라 좋은 한국은 묶여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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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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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중심가의 JW 매리어트 호텔. 그나마 인터넷 접속이 가장 잘 된다는 이 특급호텔에서 2메가바이트(MB)짜리 사진 파일을 하나 내려받는 데 10분 이상 걸렸다. 이런 상황에서 모토로라는 지난달 무선통신망을 통해 방송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사업을 벌이겠다고 발표했다. 7100만 달러를 투자해 와이맥스 네트워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 회사의 동남아 지역 기술책임자인 레이 오웬 박사는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상황에서 교외 지역까지 방송용 케이블을 깔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며 “와이맥스로 통신과 방송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던 U모바일 출범식에서도 초고속 무선통신망이 화제였다. U모바일은 KTF와 NTT도코모 등이 투자한 3세대 이동통신 회사. 연해정 U모바일 사장은 “우선 3세대 이동통신시장 1위를 하고, 동영상을 포함한 차세대 서비스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초고속인터넷 망은커녕 케이블TV 망도 제대로 못 갖춘 지역에서 IPTV는 통신·방송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다. 러시아 통신업체 엔테카(NTC)는 올 들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30여 개의 채널을 갖춘 IPTV 서비스를 시작했다. 다큐멘터리·영화·뉴스·스포츠가 실시간으로 중계된다. IPTV와 케이블·위성TV를 구별하지 않는 러시아에선 인프라만 구축하면 방송사업에 쉽게 진출할 수 있다.

네트워크가 잘 정비된 홍콩·싱가포르 등에서는 통신업체와 케이블TV 업체들이 방송시장의 주도권을 놓고 겨룬다. 싱가포르 교민 김재수씨는 “최근 영국 축구 보는 재미에 산다”고 했다. 스타허브가 케이블TV로 프리미어리그 독점 중계를 하고 있고, 싱텔이 IPTV로 챔피언스리그를 할 예정이기 때문에 영국 축구를 볼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다.

스타허브는 케이블TV를 기반으로 2000년 이통시장에 뛰어들었고, 이후 이동통신·TV·초고속인터넷을 묶은 결합 상품으로 통신시장에서 싱텔을 추격하고 있다. 싱텔은 휴대전화 가입자 580만 명 중 230만 명을 확보하고 있는 이통업체의 강자로 지난해부터는 IPTV를 도입하며 반격에 나섰다. 싱가포르 통신업체는 이처럼 케이블업체의 도전을 뿌리치기 위해 IPTV를 활용하고 있다.

이와 달리 홍콩에서는 통신업체가 방송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홍콩의 대표적 통신업체인 PCCW는 2003년부터 나우TV 서비스를 시작했다. 3년 만에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의 25%인 65만 가구를 확보했다. 올해 100만 가구를 넘어설 전망이다.

풍부한 콘텐트도 IPTV의 강점이다. 케이블TV보다 두 배 정도 많은 130여 개의 채널을 보유하고 최근에는 10억 홍콩달러(약 1200억원)를 들여 프리미어리그 독점중계권도 확보했다.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IPTV의 특징을 살려 영화 예고편을 보며 극장 좌석을 예매하거나 쇼핑 채널을 통해 레스토랑에 음식을 주문하는 등의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 회사의 최고기술책임자(CTO)인 폴 버리먼은 “하나의 콘텐트를 TV뿐 아니라 인터넷·전화·휴대전화로 동시에 제공하는 시스템을 곧 도입할 것”이라며 “모바일 IPTV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콘텐트를 즐길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쟁사인 HKBN은 IPTV를 통해 자신의 PC에 있는 콘텐트를 친구들과 공유하는 서비스를 도입했다. 트레이시 호 홍보책임자는 “IPTV는 케이블TV를 대체하는 단계를 넘어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엔 인프라는 튼실하지만 정부의 통신·방송 분리 정책으로 IPTV가 저변을 넓히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소프트뱅크그룹 BB케이블의 ‘BBTV’ 등 3개 업체가 2003년부터 서비스를 하고 있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3000만 명에 달하지만 IPTV 가입자는 100만 명 안팎에 그치고 있다. BBTV 관계자는 “건물 안의 노후 통신망 때문에 빠른 속도를 내기 어려웠던 데다 실시간 방송이 아니라 파일을 내려받아 보는 주문형비디오(VOD) 중심으로 서비스하다 보니 케이블TV를 압도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올해를 ‘IPTV 원년’으로 삼고 있다. 광케이블 망이 보급되면서 속도에 별 문제가 없어진 데다 일본 정부와 전자업계에서 다음달까지 방송을 포함한 표준 기술사양을 확정한다. 소니와 마쓰시타 등은 별도의 셋톱박스 없이 IPTV를 볼 수 있는 TV를 내놓을 예정이다. 일본의 IPTV 신규 가입자는 지난해 50만 명에서 2012년에는 1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특별취재팀=이원호(미국)·이나리(유럽)·김창우(아시아) 기자, 최형규 홍콩 특파원,
김동호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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