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회담 2시간 손 대표 말 길어지자 이 대통령 “나도 말 좀 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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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右>가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회담에 앞서 양측 배석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20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과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의 회담에서 손 대표는 주로 말하는 쪽이었고 이 대통령은 대개 듣는 쪽이었다. 배석했던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2시간의 만남 동안 손 대표가 1시간30분가량을 말했다면 이 대통령의 발언 시간은 30여 분에 불과했다”고 전했다.

최근 ‘소통(疏通)’을 화두로 내세우고 있는 이 대통령은 오전 7시25분 손 대표가 청와대 2층에 도착하자 “내가 협조받으려면 (국회로) 찾아가야 하는데 직접 (청와대로) 오신다고 하셔서…”라며 몸을 낮췄다.

두 사람은 최근 손 대표가 축구 시합 중 다리를 다친 것을 화제로 인사말을 나눈 뒤 곧바로 회담장인 백악실로 이동해 본격 대화를 시작했다. 회담은 오전 7시30분부터 2시간가량 진행됐으며 육개장·쇠고기조림 등을 메뉴로 한 한식 조찬이 곁들여졌다.

회담 중 손 대표가 쇠고기 논란의 기술적인 부분을 세밀히 지적하자 이 대통령은 “마치 우리가 축산국장처럼 말하고 있다. 너무 디테일(자세)하다”고 푸념했다고 한다. 그래도 손 대표는 “그게 키포인트”라며 물러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 대표의 말이 길어지자 이 대통령이 “나도 말 좀 하자”며 끊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회담이 끝난 뒤 배석자들이 발언록을 정리하는 동안 이 대통령과 손 대표는 차를 한 잔 하며 5~10분가량 별도의 대화를 나눴다. 이 짧은 ‘독대’ 과정에서 밀담이 오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지만 손 대표는 차 대변인을 통해 “개인적 사담을 나눴을 뿐”이라고 일축했다. 다음은 발언록 요지.

◇미국산 쇠고기 논란

▶손 대표=“조류 인플루엔자(AI)나 광우병 사태와 같은 일로 정부와 국민 간 신뢰의 위기가 왔다. 지금 이 식탁 위에 놓인 달걀을 먹을까 말까 이 정도다.”

▶이 대통령=“신뢰의 위기에 대해 공감한다.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손=“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그 미만이라 해도 특정위험물질(SRM) 수입은 안 된다. 미국 도축장에 대한 감시 감독도 필요하다.”

▶이=“오늘 오후 발표될 한·미 추가협의 내용에 사실상 야당과 국민이 우려하는 부분이 상당히 해결될 수 있다. 사실상 재협상에 준하는 내용이다. 특히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손=“국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잘못된 점은 사과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이=“성명서 같은 것을 낼 수도 있고, 그런 형식이 아닐 수도 있다. 때가 되면 국민께 말씀을 드리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국회 회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손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해 마무리해 달라. 나도 인기를 얻으려면 반대한다고 할 텐데 지도자가 그러면 안 되지 않나. FTA 비준 문제는 17대 국회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이번 17대 국회 임기 중에 마무리되는 게 좋겠다.”

▶손=“나는 경기지사 시절부터 일관되게 비준에 찬성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쇠고기 협상 때문에 FTA 문제를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재협상 없이는 어떤 말도 꺼내기 어렵다.”

▶이=“손 대표도 대통령을 해 보면 알겠지만 국제관행상 ‘재협상’이란 단어를 쓰기 어렵다.”

◇남북 관계 및 대운하

▶손=“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긍정적인 대북 정책을 인정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 요청 전이라도 식량 지원을 해야 한다. 국민이 이 대통령을 당선시킨 이유는 경제를 살리라는 것이었는데 이 대통령의 모습은 경제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운하의 덫에 걸려 있는 게 아닌가.”

▶이=“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문제 등 물밑으로는 남북 대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번에 미국이 북한에 대한 50만t 쌀 지원에 나선 것에는 한국 측의 노력도 들어가 있다. 국민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인정한다. 서민에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강화하겠다.”

글=김정하·서승욱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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