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점령군으로 안 비치려 4200명 회사에 두산 사람 6명만 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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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국내 업체가 외국 기업을 인수해 재미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삼성전자가 1994년 미국 컴퓨터 업체인 AST를 사들였지만 핵심 인력이 이탈하면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LG전자도 95년 미국 TV 메이커인 제니스를 인수한 뒤 오랫동안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문화가 전혀 다른 외국 기업을 끌어안는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세간의 시선은 지난해 세계적인 중장비 업체인 밥캣 등 잉거솔랜드의 3개 사업을 인수한 두산에 쏠린다. 인수 금액이 49억 달러(약 5조원)로 국내 기업의 최대 해외 인수합병(M&A)이라는 밥캣을 두산은 어떻게 경영하고 있을까. 밥캣의 본사가 있는 미국 서북부 노스다코타주는 겨울이면 수은주가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곳이다. 기업다운 기업은 밥캣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행기 시간이 안 맞을 경우 뉴욕에서도 10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박용만(53)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이런 곳을 한 달에 두 번꼴로 들른다. 그는 대형 M&A를 잇따라 성사시켜 그룹의 주력 업종을 완전히 바꾼 주인공이다.

“인수 기업은 피인수 기업의 점령군이 아니라 파트너가 돼야 합니다. 밥캣 같은 글로벌 기업을 인수할 땐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열린 문화를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 유연한 통합이 가능합니다.” 16일 만난 그는 이렇게 말했다. 피인수 기업 경영에 급격한 변화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혼란과 불안을 조성하면 근로자 이탈이 뻔하기 때문이다. 직원이 4200명에 달하는 밥캣에 불과 6명의 두산 직원을 파견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기존 경영진을 그대로 두고 경영 스타일도 유지하되 ‘두산 방식’을 접목하기 위해 최소 인원을 보낸 것이라 한다. 세 시간에 걸친 인터뷰에서 그는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하게 밝혔다. 

-밥캣 직원들이 한국과 두산을 잘 몰라 불안했을 텐데.

“인수 계약을 마치고 닷새 뒤에 밥캣을 찾아가 회사의 브랜드와 경영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며 불안감을 가라앉혔다. 밥캣에 한국을 알리는 책자를 만들어 돌리자는 의견도 나왔으나 내가 안 된다고 했다. 미국과 한국의 문화적 차이가 문제가 아니다.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의 한국 직원들도 미국 기업 방식대로 움직인다.“

-경영 스타일에서 두 기업에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

“두산의 기업문화와 밥캣의 그것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우리는 지난 6년간 엄청난 비용과 노력을 들여 글로벌 경영에 부합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실적 평가제도, 투명한 경영체제, 전략적 사고방식이 그런 것이다. 우리는 선진 인사제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GE 사람을 채용하기도 했다. 밥캣 직원들이 처음엔 나를 ‘체어맨 박’이라고 불렀다가 야단 맞고 지금은 ‘YM’이라고 부른다 .”

-잘 굴러가는 기업이니 그대로 두면 된다는 얘긴가.

“그렇지는 않다. 지나친 간섭을 하지 않되 두산이 가진 강점을 접목해야 한다. 전략적 경영은 아무래도 밥캣보다 우리가 강하다. 또 현장에서 과감한 시도를 했다가 실패하면 이를 칭찬해 주는 ‘따뜻한 성과주의’ 같은 것도 밥캣에는 없다. 두 기업의 장점을 취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믿는다.”

글=이재훈·한애란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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