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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살고재산도키우고>파주군 웅담리 김광림 시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종삼(시인 김종삼)은 덤을 좀만누리다 떠나갔지만/피카소가 가로챈 많은 덤 때문에/중섭(화가 이중섭)은 진작 가버렸다/가래 끓는 소리로/버티던 지훈(시인 조지훈)도/쉰의 고개턱에 걸려 그만 주저앉았다… 하다못해 맹물이라도 마시며/이제부터 나는 덤으로 산다」 먼저 세상을 뜬 지인(知人)들을 그리며 김광림(金光林.66.전 한국시인협회장.장안전문대 교수)시인은 자신의 남은 생을 이렇게 읊었다.
그의 나이 예순을 막 넘길때 쓴 시다.
덤으로 사는 인생,그래서 그는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 덤을 세상에 나눠주는 재미로 살아간다.시를 통해.
경기도파주군법원읍웅담리는 바로 그 덤으로 사는 인생을 위해 그가 선택한 정착지다.
본래 사촌누이가 갖고 있던 땅을 500평 빌려 250평을 대지로 전용,약 9,000만원을 들여 건평 35평의 집을 짓고 지난 6월말 이곳으로 이사했다.
함경도 원산에서 6남매중 맏이로 태어나 혈혈단신 월남한 그에게는 사촌누이가 유일한 혈친이다.
누이는 『땅값은 형편되는대로 갚으라』며 선선히 땅을 내주었다. 이번 학기를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나는 그는 퇴직금으로 땅값(평당 10만원)을 청산할 계획이다.
집은 둘째(조각가 김상일씨)가 맡아 지었으니 그가 들인 품은사실 별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들은 『가장 큰 품은 아버지 몫』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곳에서 그의 직장인 수원 장안전문대까지 출퇴근하려면 서울 구파발까지 직행버스로 1시간10분,구파발에서 수원까지 전철로 1시간30분,전철역에서 학교까지 스쿨버스로 30분,갈아타는 시간 20분을 합해 3시간30분이 꼬박 걸린다.
수업이 있는 날은 하루 7시간을 길에서 보내는 셈이다.그가 이런 고행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지 않았다면 가족들도 이곳에 전원주택을 장만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모두시재(詩材)가 되기 때문에 그는 하루 7시간의 여행을 오히려 소중하게 여긴다.
그가 서울을 떠난 것은 50대 후반의 일이었다.
그는 서울에 사는동안 한번도 내집을 가져보지 못했다.
결국에는 아내가 팔을 걷고 나서 단독주택을 지어 파는 이른바「집장사」를 하기도 했지만 남의 집만 실컷 지어주고 손을 털고말았다. 『서울바닥에는 내 몫으로 돌아올 집이 없는가 보다』고생각한 시인은 나이 예순 무렵에 파주군월롱면위전리에 터를 잡아낙향했다.
덤으로 살 나이에 겨우 집다운 집을 가져본 것이다.
그러나 인근의 금촌읍이 커지면서 이곳도 도시와 닮은 꼴이 돼가자 올초 누이의 도움으로 서울냄새가 닿지 않는 이곳에 터를 잡아 내려왔다.시우(詩友)들은 『왜 이렇게 멀리 내려왔느냐』고하지만 고향 원산이 한발짝 더 가까워졌고,서울에 서 멀어졌기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더욱 반가운 이곳이 그는 마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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