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귀환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2호 28면

코스피지수가 연중 최고치로 한 주를 마감했다. 아득해 보이던 지수 1900이 눈앞에 다가왔다. 일등공신은 외국인이다. 팔자 주문만 쏟아내던 이들이 매수세력으로 돌변하며 큰손의 면모를 과시했다. 15일 3200억원, 16일 4400억원어치를 쓸어담았다. 지난해 6월부터 계속되던 외국인 순매도 행진이 멈추며 지난달 중순 잠깐 30%선 밑으로까지 떨어졌던 외국인 지분율이 31%대를 탈환했다.

외국인이 변심한 이유는 뭘까. 증권가에선 서너 가지를 꼽는다. 미국 신용경색 위기가 진정되며 급전의 필요성이 많이 줄었다는 게 첫째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심각했던 지난 1월 8조원을 넘었던 외국인 매도는 베어스턴스 사태가 불거진 3월 17일 이후 크게 감소해 지난달 1조원대를 기록했다. 8개월 만에 5.25%에서 2%로 낮아진 미국 금리도 달러의 물꼬를 국내로 향하게 했다. 미국 금리가 2% 이내를 맴돌던 2003∼2004년 외국인들은 한국 증시에서 11조원이 넘는 순매수를 기록했지만 미국 금리가 3%를 넘어선 2005년 이후엔 줄곧 팔자로 일관했다.

한국 시장의 독특한 상황도 한 몫을 했다. 대표적인 게 환율이다. 달러에 대한 원화가치가 연초보다 11.9% 떨어진 반면 엔화·유로화는 각각 5.8%, 5.4% 절상됐다. 달러로 표시한 한국 주식이 값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연중 최고치인 코스피지수를 달러로 환산하면 연초보다 오히려 8%가량 떨어진 상태다. 유로로 보면 말할 나위가 없다. 최근 유로화권인 유럽이나 중동에서 오는 자금이 늘어난 이유다. 미국이 기침하면 몸살을 앓던 한국 기업의 체질이 강해진 것도 외국인을 끌어들였다. 지난해와 올 1분기 주요 기업은 줄줄이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다. 정보기술(IT) 제품을 중심으로 중동·남미·러시아 등 신흥시장에 대한 수출이 쑥쑥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 따라 강남 가기엔 아직 이른 것 같다. 세계 경제가 좋아져서 외국인 순매수가 늘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세계 경제가 쪼그라든 가운데 보다 높은 수익을 좇아 돈이 옮겨가는 일종의 ‘풍선효과’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소비 심리는 28년 만의 최악을 기록했다. 유가는 지난 주말 또다시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 경제가 내리막을 벗어났다는 신호는 아직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국내 상황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이나 한국개발연구원(KDI)마저 성장률이 낮아지고 물가는 더 오를 것이라고 진단한다. 주가라는 게 실물 경기 흐름과 나란히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경험칙에 비추어 대세 상승의 낙관론을 펴긴 이르다.

외국인이 전지전능하다는 신화도 깨진 상태다. 10년 가까이 지속되던 ‘외국인 불패론’은 지난해부터 체면을 구기기 시작했다. 상승장에서 팔고 하락장에서 사들이며 엇박자를 냈던 때가 많았다. 외국인의 순매수에 선물 거래가 많았다는 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길게 보기보다 치고 빠지기식 단타 거래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는 얘기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