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과학으로 세상보기

수학과 친구 하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첫째 현상. 그동안 이공계 기피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온 것은 이공계 인력에 대한 낮은 처우로,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제안됐었다. 그런데 최근 초.중.고등학생 170만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이공계 진학을 꺼리는 이유로 53%나 되는 학생들이 '어려운 전공 공부'를 꼽았다. 즉 학생들에게는 자연계열 과목의 난해함이 이공계 진학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현상. 수능에서 인문.자연계열의 응시자 비율이 1997학년도에는 47.8%와 43.2%였지만 2004학년도에는 53.5%와 31.5%로 인문계열 편중 현상이 점차 심화했다. 수능에서 자연계열을 선택하면 점수를 따기 어렵다고 판단한 일부 학생이 인문계열로 수능을 치르고 자연계열로 교차지원해 왔다. 학생의 선택권 확대를 위해 허용된 교차지원이 점수 취득 기회로 악용된 것이다.

선택 수능으로 바뀐 올해부터는 계열의 의미가 없어지며, 각 대학은 전공에 부합되는 수능 과목을 입시 요강에 명시한다. 고교 졸업생의 감소로 대학마다 학생을 끌기 위해 입시 장사를 하는 마당에 인문계열 학과에서 수리탐구를 요구하는 배짱 좋은 대학은 그리 많지 않다. 적지 않은 대학이 인문계열 지원 자격으로 언어와 수탐 중 하나만 요구하기 때문에 수탐을 피하기 위해 인문계열을 택하는 학생이 상당수 있으리라 예측된다.

이러한 현상은 모두 자연계열 공부의 어려움에서 기인한다. 인문계열에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느끼는 교과가 많은 반면 자연계열의 필수 과목인 수학과 과학은 보기만 해도 두통이 생길 것 같은 하드코어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학생들이 수학을 어렵게 느끼는 요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수학은 다른 교과보다 위계성이 뚜렷해 한번 생긴 학습 결손은 이후 계속적인 방해 요소로 작용한다. 따라서 어느 한 순간의 수학 부진은 영원한 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대부분의 수학 교과서는 실생활 맥락을 배제하고 개념과 기호와 알고리즘의 조합으로 내용을 전개하기에, 학생들은 수학과 실생활의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한 채 형식적인 연역체계로서 수학을 배운다. 학습자가 새로운 내용을 기존 인지 구조에 유의미하게 접합하려면 가능한 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상황과 더불어 학습하는 것이 필요함을 염두에 둘 때 탈맥락적이고 무미건조한 현재의 지식 위주 교육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

실생활과 관련짓는 수학 문제라도 상황 설정이나 주어진 자료가 인위적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처음에는 문제의 수치가 복잡해 보였지만 계산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어색하게 약분이 되면서 결국 답은 간단한 수가 된다. 해결 과정에서 복잡한 계산이 수반되는 것을 우려해 수치를 조작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를 풀면서 계산이 단순화되지 않으면 끝까지 풀지도 않고 포기하거나 처음부터 다시 풀게 된다. 이런 유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접하면 수학이 일상의 다양한 국면에서 활용되는 유용한 지식이 아니라 '문제를 위한 문제'나 해결하는 고답적인 지식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불식하려면 현실의 상황과 자료를 가공 없이 수학 문제로 옮겨와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계산의 복잡성에 구애받지 않도록 공학적 도구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학습동기 유발을 위해 실생활 소재로 수학 내용을 전개하고 수학사를 수업과 접목하는 등의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학생들을 수학 학습의 장(場)으로 유도하기 위한 이런 장치는 수학을 희화화(戱畵化)한다고 비판받기도 하지만, 추상성이 강해 친해지기 어려운 수학과 학습자를 매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앞으로 수학 수업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다양한 교수.학습 자료와 방법의 개발이 보다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에 대한 교사 연수도 정책적인 차원에서 지원돼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이공계 기피를 막는 원천적인 기초 공사라고 할 수 있다.

박경미 홍익대 교수.수학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