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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컴도 내쫓는 카리스마 … 그래‘서’ 퍼거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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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퍼거슨 감독은 무섭고 차가운 성격 내면에 선수 한 명 한 명의 처지를 생각하는 따뜻함을 품고 있다. 3일 홈 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프리미어리그 경기에서 웨스트햄을 4-1로 대파한 뒤 퍼거슨 감독<中>이 선수들을 격려하는 박수를 치고 있다. 맨 오른쪽에 박지성의 모습이 보인다. [맨체스터 AP=연합뉴스]

알렉스 퍼거슨(67·Alex Ferguson) 앞에는 ‘서(Sir)’라는 호칭이 붙는다. 1999년 그는 영국 여왕의 기사 작위를 받아 ‘퍼거슨 경’이 됐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의 최강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3년째 이끌고 있는 퍼거슨 감독. 그의 리더십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12일(한국시간) 끝난 2007∼2008 프리미어리그에서 맨유를 2년 연속 우승으로 이끌었다. 팀 통산 10번째 우승이다. 맨유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도 올라 22일 첼시와 우승을 다툰다. 23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퍼거슨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일까.

◇정상에 선 순간 개혁=퍼거슨은 86년 부임 직후부터 유소년 육성 시스템에 힘을 쏟았다.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니키 버트 등 맨유 유소년 클럽에서 자란 선수들은 90년대 중반 팀의 중추로 자리 잡았다.

퍼거슨은 이 ‘퍼기(퍼거슨의 애칭)의 아이들’을 이끌고 우승컵을 모아 나갔다. 그러나 퍼거슨은 2003년 팀의 핵심이자 최고 스타인 베컴을 내쫓는다. 그것도 축구화를 걷어차 베컴의 이마를 찢어 놓는 ‘활극’까지 하면서. 팝 스타 빅토리아와 결혼한 베컴이 흐트러진 사생활로 팀 분위기를 해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 패스 위주의 정적인 플레이를 하는 베컴을 앞세워서는 정상을 지키기 어렵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2006년에는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 골잡이 뤼트 판 니스텔로이를 레알 마드리드(스페인)로 팔아 버린다. 공격이 니스텔로이에게만 집중되는 ‘킹 뤼트 시스템’을 해체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한 명의 스트라이커에게 득점을 의존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이후 맨유는 웨인 루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박지성 등이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하고 활기찬 공격력으로 프리미어리그를 주름잡고 있다.

◇무서운 만큼 부드럽게=퍼거슨은 ‘헤어드라이어 트리트먼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선수들 눈앞에서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모습이 헤어드라이어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은 것이다. 그만큼 성격이 불같다. 그러나 무섭기만 해서는 선수를 다룰 수 없다. 강한 만큼 그는 부드럽다.

어느 날 원정 경기에서 패하고 선수들이 버스에 오르자 퍼거슨은 맥주 한 박스를 실었다. 긱스·스콜스 등 노장들은 언제 패했느냐는 듯 맥주를 마시고 포커를 치면서 맨체스터로 올라왔다. 침묵 속에 반성의 시간을 보내는 한국 축구 문화에 익숙한 박지성에게는 낯선 광경이었다. 퍼거슨은 1등을 지켜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선수들이 빨리 패배감을 털어내도록 세심한 배려를 한 것이다. 박지성이 입단한 2005년 8월 이후 맨유는 단 한번도 연패가 없다.

그는 자서전에서 “중요한 경기에서 지고 나면 베개에 머리를 푹 박고 일어나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는 패배감을 스스로 다스린 뒤 부진한 선수들을 윽박지르기보다는 어린아이처럼 웃어 보이며 팀 분위기를 다잡는다.

◇악동은 길들여=축구 감독들에게는 ‘조지 베스트 증후군(George Best Syndrome)’이란 게 있다. 말썽꾼 선수들을 자신만큼은 휘어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심리다. 2005년 타계한 맨유의 대표적 악동 베스트에서 유래한 용어다.

퍼거슨은 다양한 수(手)를 갖고 악동들을 휘어잡았다. 92년 입단한 프랑스 출신 에릭 칸토나는 95년 자신을 욕하는 관중을 향해 ‘쿵푸 킥’을 날려 8개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영국 언론이 들끓었지만 그는 칸토나를 변호했고, 프랑스까지 찾아가 밤새 술을 마시며 설득해 그를 다시 데려왔다. ‘최고의 주장’이었던 로이 킨은 다혈질 성격으로 자주 퇴장을 당했다. 99년 아스널과의 FA컵 준결승전에서도 킨이 퇴장당해 경기를 망칠 뻔했다. 그러나 퍼거슨은 “나도 프로 선수 생활 16년간 여섯 번이나 퇴장당했다”면서 그를 옹호했다.

루니와 호날두도 술과 여자가 얽힌 사고를 수시로 일으킨다. 그러나 이들은 퍼거슨에게 절대 복종하고 경기장에서 최고의 플레이를 펼쳐 보인다. 퍼거슨의 신도가 된 것이다.

정영재·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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