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반도 분단과 일본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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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반도 분단의 원인은 일본의 식민통치 때문이었다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언명(言明)은 정확한 것이다.일본이 한반도 분할에 책임질 일이 없다는 일본의 주장은 역사의 엄연한 사실을 외면한 망설(妄說)이다.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명나라로,그리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통해 한반도와 대륙에 진출하지 않았다면,독립만세를 부르던 무고한 한민족을 살상하지 않았다면,만주를 침공하고 중국대륙에서 수백만 대군으로 1,500만 중국인을 살해하지 않 았다면 왜 일본이 군국주의 국가 또는 침략국가라는 낙인이 찍혔을까.
대한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해 몰락시키고 한반도를 일본의 황토(皇土)로 만드는 과정에서 한국정부나 국민의 동의를 얻었단 말인가. 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없었다면,대한제국이 태평양전쟁 종전(終戰)까지 그대로 있었다면,일본이 한반도내 독립국가를 그대로 두었다면 과연 한반도가 분할.분단됐을까.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지 않았다면 1943년 카이로선언에서 일본이 한반도에서 물러가야 하고 한국은 자유로운 독립국가로 원상 회복돼야 한다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미국의 대일전(對日戰)을 주도했던 조지 마셜장군은 1948년김활란(金活蘭)여사에게,그리고 1959년 서거직전 특별회견에서한반도 분할은 일본군의 한반도 배치 때문에 이뤄졌다고 밝혔다.
미국은 1945년 8월10일 조선내 일본군사령 관이 대본영(大本營)에 보낸 전보에서 일본군의 모종조치(한반도내 일본군 전체를 만주의 관동군에 귀속시켜 패전때 만주와 조선의 일본군 전부를 소련군에 일괄 항복시키는 방책)를 탐지하고 소련의 한반도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한반도를 북위 38도선으로 양분(兩分)하는 방안을 채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일본의 극비문헌 소실(일본측은 미국 공군의 폭격으로 없어졌다고 주장)로 오랫동안 밝혀지지 못하고 미궁(迷宮)에 빠져 있었으나 최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비밀분류 해제로 확인될 수 있었다.
일본 학자들중에도 한반도 분단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옳게 분석.평가하고 일본 책임론을 제대로 밝힌 학자들이 있다.
도쿄(東京)대 와타 하루키(和田春樹)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소련이 참전하면 한반도는 분할 점령케 될 운명에 있었으므로 소련 참전 이전에 전쟁을 끝내지 않은 일본은 조선의 분할 점령,나아가 분단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1945년 봄 일본이 오키나와(沖繩)를 빼앗긴 때로부터 약 3개월동안 항복해야 하고또 항복할 수 있던 시기가 엄연히 있었으며,특히 포츠담선언이 나온 7월26일부터 8월6일 히로시마(廣島)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때까지 약 10일간 「귀중한 시 간」이 있었다.일본이 그때바로 항복했으면 소련을 제외한 연합군에 항복하게 돼 한반도 분할을 모면할 수 있었다는 것이 미국이나 일본의 많은 학자들의 새로운 통설(通說)이다.
러시아 학자들도 한반도 분할 책임은 종래 알려진 것처럼 미국과 소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일본에 있다고 주장하고있다.당시 일본은 전후(戰後)일본 재생(再生)에 방해될 강력한단일국가가 한반도에 탄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 다.일본은 종전(終戰)에 앞서 스웨덴.스위스,그리고 소련을 통한 화평공작(和平工作)으로 연합국들을 이간시키려는 술수를 구사하면서 한반도를전후에도 계속 영유하려는 절묘한 정략(政略)을 획책한 바 있었으나 미국의 반대로 좌절됐다.그러 나 예상대로 한반도는 분할됐고,그후 한국전쟁으로 치달았으며,그 여파로 일본은 특수(特需)경기를 통해 엄청난 치부(致富)를 했다.
한반도가 잘 안될 때 잘돼온 일본이 최근 우리 어깨너머로 북한에 접근하는 것은 김대통령이 언급한대로 한반도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우리는 그뒤에 일본의 어떤 정략이 숨어있는지 경계해야 한다.
(서울대 강사.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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