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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인의 축제 61회 칸 영화제 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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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제61회 칸영화제에서 각각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을 맡은 숀 펜<左>과 나탈리 포트만이 14일 얼굴을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칸=AP 연합뉴스]

칸영화제 개막작 ‘눈먼 자들의 도시’에 출연한 여배우들. 왼쪽부터 일본의 요시노 기무라, 미국의 줄리언 무어, 브라질의 알리스 브라가. [칸=AP 연합뉴스]

세계 영화인의 축제인 제61회 칸영화제가 14일(현지시간) 남프랑스 지중해의 눈부신 햇살과 함께 화려하게 개막됐다. 개막작으로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가 상영됐다. 포르투갈의 노벨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원작으로 브라질 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가 연출했다. 시야가 하얗게 변하면서 시력을 잃는 증세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기이한 상황을 배경으로 공포·탐욕·이기심 때문에 추악하게 변해가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줄리언 무어는 실명한 남편 (마크 러팔로)을 따라 환자가 아니면서도 격리수용소에 들어가 폭력적 상황을 목격하는 주인공을 연기했다. 25일까지 계속되는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는 총 22개 작품이 초청됐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감독 겸 배우 숀 펜도 14일 기자회견을 열고 올 칸의 심사기준을 밝혔다.

“우리는 영화를 평가하는 게 아닙니다. 영화가 주는 열정에 반응할 따름이지요.”

제61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할리우드 연기파 배우 겸 감독 숀 펜(48)의 말이다. 젊은 시절 가수 마돈나와의 결혼·이혼으로 할리우드 가십에 단골로 오르내렸던 그이지만 이제는 아카데미·칸 남우주연상을 두루 수상한 것을 비롯, 개성 강한 연기에 연출력까지 더해 국제영화제의 단골로 자리잡았다. 이날 기자회견은 영화는 물론이고 정치에 대한 그의 견해와 반항적 기질, 유머감각이 고루 드러난 무대였다.

숀 펜은 이날 중국의 지진, 미얀마의 홍수 등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일어난 자연재앙에 대해 아픔을 표시했다. 그는 “중국의 지진이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느냐”는 물음에 “자연재해는 영화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며 “재해는 항상 일어나며 그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대답했다.

미국 부시 행정부에 반대하는 입장을 뚜렷이 밝혀온 그는 이날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질문에 대해서도 호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다가올 미국 대선에 대해서는 “특정후보를 공개 지지하지 않는다”면서도 “버락 오바마가 일으킨 경이적인 자극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의 정치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이 나오자 “정치라는 용어를 우리가 야만스럽게 쓰는 게 부끄럽다”며 “정치란 사람들이 서로 돕는 조직을 뜻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보다 넓은 의미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번 칸영화제에 ‘심사위원장의 선택’이라는 새로운 메뉴를 만들어 ‘세 번째 물결’(The Third Wave)을 특별상영작에 포함시킨 것이 한 그 예다. ‘세 번째 물결’은 2004년 쓰나미가 휩쓸고 간 스리랑카에서 맨몸으로 활동을 벌인 자원봉사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그는 “내가 본 중에 인생의 목적에 대한 해답을 주는 영화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라며 “정치인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이 세계의 현 상태를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영화”라고 강조했다.

숀 펜은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수시로 유머기질을 발휘했다. 배우·감독을 겸하는 대선배이자 올 경쟁부문에 진출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두고 “내가 태어난 뒤로 그가 만든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나에게 출연을 제안한 건 딱 한 편뿐이다. 그러니 (심사위원장으로서) 결코 편견은 없다”고 말해 좌중을 한바탕 웃겼다.

외국의 한 기자가 “12일간의 영화제 기간 내내 술 취하지 않고 분별력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심사위원장을 맡는 걸 망설였다는 얘기가 있다”고 하자 이내 “(영화제가)며칠이나 남았냐”는 농담조 반문으로 응수했다.

모범생과 거리가 먼 그의 기질은 회견장에서 참지 못하고 담배를 피워 무는 모습으로 포착됐다. 프랑스에서는 올 초부터 공공건물내의 흡연이 전면 금지된 상태다. 동료 심사위원이자 프랑스 감독인 마리얀 샤트라피 역시 “우리 중에는 의학적인 이유로 흡연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농담과 함께 담배를 피우며 숀 펜을 거들기도 했다.

올 9명의 심사위원은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 미국 배우 나탈리 포트만, 이탈리아 배우 세르지오 카스텔리토, 태국 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 등 다국적으로 구성됐다. 숀 펜은 “(심사위원들의)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영향을 줄망정 편견이 되지는 않는다”며 “나는 영화가 (일종의)국가이자, 언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최고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비롯한 수상작은 25일 폐막식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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