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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출신 盧대통령 좀 더 쿨했으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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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서울 분위기는 '정말' 어떻습디까?"

그와의 인터뷰가 때아닌 토론으로 바뀌었다. 인터넷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의원(논객) 공서환(53)씨. 충남 대산에 있는 한국화공기술연구소 대산 소장이다.기자의 질문에 열변을 토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질문 보따리를 잔뜩 풀어 놓는다.

▶ 인터넷 중앙일보 디지털 국회의원 공서환씨

공씨가 탄핵 가결 직후 인터넷 중앙일보의 '디지털 국회'에 올린 '대통령이 던진 밑밥 덥석 문 한민당'이란 글은 3일만에 14만건이란 조회수를 기록했다. 가벼운 글들이 아니고,사회적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논리적인 토론을 벌이는 디지털 국회의 성격에 비추어 놀라운 클릭수다. 지난해 9월말 디지털 국회 출범후 최대다.

글의 내용이 민감한 탓에 논란도 불렀다. 그의 글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댓글도 굴비엮듯 줄줄이 이어졌다.

인터넷 중앙일보의 '디지털 국회'(www.joongang.co.kr/assembly)가 이번 탄핵 사태를 겪으며 욕설 위주인 다른 사이트와는 차별되는 사회문제에 대한 합리적 토론 광장으로 발돋움했다.

현실 국회가 제 구실을 못하는 가운데 국민의견을 수렴하고 대안도 모색하는 코너여서 우리 국회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현실 국회 처럼 상임위(13개)를 두고 복지,여성 등 분야별로 정책 토론을 벌이는 코너는 인터넷 중앙일보가 유일하다.

디지털 국회에는 일반 네티즌 외에 검증된 논객인 97명의 디지털 국회의원이 활동하고있다.공씨도 그중 한명이다.

논리적이고 제법 긴 글을 써야하는데도 지금까지 올라온 글만 1만여건에 이를 정도로 네티즌들의 참여도가 높다.좋은 글들은 중앙일보 지면에도 '디지털 국회 발언대'라는 코너를 통해 소개된다.인터넷 중앙일보는 매달 우수 논객을 뽑아 포상도 하고있다.

공씨는 "지금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쌓은 환경관련 지식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디지털 국회의원에 응모했으며 지금까지 네티즌들의 반응이 좋아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탄핵 가결이 왜 '밑밥론'으로 해석이 가능한지를 설명해 나갔다.

그는 먼저 "지난해 노대통령에게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고 주저없이 얘기했다. 판을 한번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렇지만 노대통령에게 인재 풀이 없어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말하면 마이너리그 출신이라는 거죠".

대선 당시 아들들과 밤샘 토론을 한 끝에 노대통령 찍는걸 '당론'으로 정했지만 대통령이 된 뒤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노대통령이 정공법을 얘기하면서 목적이 옳다는 이유로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노사모 회원이기도 한 그는 개혁당에도 입당했다. 그러나 핵심이었던 유시민 의원이 도중하차하면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밑밥'에 생각이 미친건 지난 11일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보고 나서다. 얼어붙은 정국을 풀기 위해 국민들에게 사과를 할 것이란 예상과는 달랐다. 그는 '선거전략으로 그런다'고 생각했다.두 아들은 왜 그런 글을 올렸느냐고 항의했다. 한나라와 민주당이 무슨 염치로 탄핵을 하느냐는 논리였다.

그는 골수 화학맨이다. 첫 직장은 대한석유공사였다. 이 회사는 그후 유공이 됐는데 울산.여천 등에서 13년을 근무했다. 그리곤 90년에 충남 대산공단에 있는 삼성종합화학에서 일했다. 지난 1998년엔 대만 포모사 그룹이 짓는 공장의 감독관으로도 있었다. 그러다 중국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1년을 그 곳에서 보냈다.

'다시는 봉급쟁이는 안하겠다'고 생각했는데 4년 전 충남 대산의 한국화공기술연구소에 온 건 순전히 사장님 때문이다. 시쳇말로 '코드'가 맞는다. 사장이 정도에서 벗어나는 일은 안하기 때문이다. 공씨는 지금 연구소장직을 맡아 계면활성제.비누.화장품 등의 중간제품인 산화에틸렌(EO)을 생산하는 일을 총괄한다.

젊었을 때는 기자나 프로듀서(PD)가 하고 싶었다고 한다. 집안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학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마쳤다.

얘기를 하다보니 탄핵같은 사태를 막기 위한 권력구조(대통령제.내각제)개편이나 청년실업과 노조에 대한 소신 등 다양한 주제가 식탁 위에 올랐다.

그는 스스로 '진보'라고 말한다. 옛날엔 노동조합 일도 열심히 했다. 한 때는 노조위원장까지 해봤다. 원래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란다. 알고 싶은게 있으면 절대 못 참는 성미다. 글쓰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궁금증이 많아서다.

특히 유공에 다닐 때 경영 논문을 쓰면서 글솜씨를 발휘했다. 80년대 중반에 50만원이나 되는 많은 상금을 준다는 유혹(?)에 빠져 1년에 한번씩 있던 사내 논문 경연 대회에 시험삼아 작품을 내보냈다. 기대도 안했는데 당선됐다. 이후로 많은 당선작을 냈다.

이런 그에게 인터넷 중앙일보가 만든 디지털 국회 코너는 멍석이 됐다. 디지털 국회에선 환경운동과 관련한 글을 주로 쓰겠다고 출사표를 던졌었다.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낸 그였지만 아직도 노대통령에게 많은 애정을 갖고 있다. "본인이 원하는 국정의 그림이 있을 겁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한 좋은 그림이라고 믿지요". 그러면서도 "대통령이 '쿨(Cool)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목적이 좋다고 이런 과정을 밟는건 마이너 리그에서 지낸 한계 때문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공씨는 20대 못지않게 사이버 공간을 휘젓고 다닌다. 잡기(雜技)에 능해 낚시.등산.행글라이더 등 다양한 분야의 동호회에서 활동한다. 그는 "디지털 국회가 네티즌들에게 '숙제'를 줬으면 좋겠다"면서 "특정한 현안에 대해 상임위별로 토론 등을 하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도 했다.

대산=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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