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놀이기구 … 요즘 대학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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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학생들이 14일 교내에서 대형 미끄럼틀과 덤블링을 타고 있다. 이들 놀이기구는 총학생회가 대동제 동안 학우들에게 ‘놀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대여했다. [사진=김성룡 기자]

14일 오후 3시, 축제가 한창인 서울 신촌의 연세대 캠퍼스에는 “꺄악-” 하는 비명소리로 가득 찼다. 이 소리는 백주년기념관 옆 공터에 설치된 초대형 미끄럼틀에서 나왔다.

13일부터 이틀 동안 열린 대동제에서 미끄럼틀은 단연 인기였다. 미끄럼틀을 타기 위해 긴 줄이 생겼다. 초대형 미끄럼틀은 총학생회가 학우들의 ‘놀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대여업체에서 500만원을 주고 이틀 동안 빌린 것이다. 공기주입식으로 설치된 이 미끄럼틀의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2·18·12m에 달한다.

◇‘놀자판’된 대학 축제=축제 기간 동안 학교 곳곳에는 각종 놀이기구가 설치됐다. 마치 놀이공원을 연상케 했다. 정치 구호로 가득했던 과거의 대학 축제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연세대 대강당 앞에는 ‘7080 연세롤러장’이 설치됐다. 본관 앞에 설치된 ‘방방퐁퐁 덤블링’도 인기였다. 연세대 김현식 대동제 기획단장은 “축제에 잘 참가하지 않는 고학년들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놀이기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념을 설파하는 것보다 가볍게 참여해 즐길 수 있게 하는 게 대학 축제의 트렌드”라고 설명했다.

다른 대학의 축제 형태도 마찬가지다. 지난 6일부터 나흘간 축제를 연 성균관대에는 ‘대형 미끄럼틀’ ‘스파이더웹’(높이 뛰어서 벽에 달라붙는 기구) ‘글래디에이터’(원형 경기장에서 글러브와 막대기를 이용해 싸우도록 만든 기구) 등의 놀이기구가 설치됐다. 13일부터 사흘간 축제를 열고 있는 명지대도 ‘스파이더웹’과 ‘도전점프착지’ 등의 놀이기구를 설치했다.

놀이기구 대여업체 관계자는 “이제까지 어린이 행사장과 기업 체육대회 등에 놀이기구를 대여해 왔으나 대학에 대여한 건 최근에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축제문화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특히 대학 축제가 ‘시위 현장’ 일색인 것도 문제지만 ‘놀이공원’으로 바뀌는 것도 문제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박지원(24·연세대 영문과)씨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놀이기구 타고 학교에서 파는 술을 밤새 마시는 게 축제라고 하면 다들 그게 무슨 축제냐며 의아해한다. 요즘 축제에는 남는 게 전혀 없다”고 토로했다. 유지상(25·단국대 언론영상학부)씨는 “나름의 문화를 생산해야 하는 대학 축제가 놀이기구 설치하는 식으로 단순한 재미만을 추구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모(25)씨는 “정치에 관심 없는 대다수 학생을 고려하면 놀이기구를 타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게 진짜 축제”라고 밝혔다.

고려대 윤인진(사회학) 교수는 “취업과 경력 개발 등 개인적인 문제가 정치 문제보다 더 중요한 대학생들의 단면을 대학 축제가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홍보 축제?=대학 축제에 돈을 내고 홍보 부스를 차리는 기업들이 점차 늘고 있다. 성균관대의 경우 축제 때 SK·카스레몬·처음처럼·왓슨스 메이크업 등 각종 외부 스폰서 업체가 학내에 부스를 마련했다. 각종 시음행사 및 제품 홍보행사가 이어졌다. 21일부터 축제를 개최하는 한양대도 3~4개 업체를 지정해 부스 하나당 100만원씩을 받고 유치할 예정이다. 한양대 권중도 총학생회장은 “몸값 비싼 연예인을 부르는 등 각종 행사 비용 때문에 기업의 협찬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홍보행사에 대한 비난 여론도 있다. 축제가 끝난 뒤 성균관대에는 “학생들이 축제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소비자로 전락했다”며 축제를 비난하는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김수경(25·여·서울대 경영학과 )씨는 “대학의 축제라면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해야 하는데 기업 홍보행사처럼 돈으로 도배한 느낌이 든다”고 아쉬워했다.

글=한은화·김진경·김민상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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