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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인종갈등>下.높아지는 보수의 물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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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O J 심슨재판과 16일의 워싱턴 흑인남성 100만 대행진으로 미국내에서 흑백문제가 다시 최전면에 떠오르고 있다.이는 단순한 인종차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경제.정치분야에서 부각되고 있는 미국 신보수주의 기류의 결과라는 분석이다 .
흑인이 전통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민주당이 지난해 선거에서 유권자들의 보수화로 인해 참패한 데 이어 내년도 선거에서도 백인이 다수인 유권자들의 이같은 추세가 계속될 전망이라 흑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통로가 좁아지고 있는 것으 로 보고 있다.또 흑인들이 믿고 있는 민주당마저 종전의 진보성향에서 중도내지 보수근접으로 변신하고 있어 흑인들은 정치적으로 기댈 언덕마저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공화당 주도의 의회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거부권행사 위협에도불구하고 복지제도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다.정부의 복지부문지출재원 축소가 골자인 이 복지제도 개혁은 빈곤층과,지식.기술에서 하급인력이 많은 흑인사회에 당장 불이익으로 연결 되는 것이다.
또 지난해 선거 이후 공화당 백인보수세력들이 앞장서 주도하고있는 인종차별금지법(어퍼머티브 액트)의 폐기론도 이 법에 근거한 고용차별금지법 폐기를 몰고올 수 있어 흑인들이 지난 30년간 누려 온,쿼터에 의한 직장보장마저 위협받게 될지 모른다.
이런 분위기는 흑인들이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으로이어지고 있다.심슨재판의 법적 정의나 제도적 타당성과 관계 없이 흑인들은 심슨의 무죄평결을 백인에 대한 승리로 간주하며,따라서 패러컨 주도의 워싱턴 흑인남성 100만 대 행진에 그 어느때보다도 많이 참가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
심슨평결 이후 지식인들이 배심원들의 의사를 지배한 것은 법적정의가 아닌 다른 요소에 있다며 재판제도인 배심원제도를 완전히폐기하라는 주장을 결코 하지 않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냉전종식후 미국내에서 강화되고 있는 보수물결이 위기의식에 빠진 흑인사회를 더욱 단결시킨 셈이다.그 결과가 재판의 정의,사회적.경제적 기회균등 및 정당한 경쟁이라는 제반원칙마저 백인을위한 것이라는 왜곡된 인식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로드니 킹 사건에 의한 92년의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은 지역내 사건으로 국한됐지만 심슨사건과 100만 대행진에서 보여주는최근의 흑백문제는 전국적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흑인사회의 위기의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이런 흑백갈등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발전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그러나 패러컨이 재미한국인을 흑인사회에서 돈을 번 뒤 아무 것도 돌려주지 않은 유대인에 이은 제2의 「흡혈귀」라고 선동함으로써 흑백갈등의 물꼬가 엉뚱하게 한-흑 갈등으로 비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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