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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우리말 우리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뚜뚜랑 땅땅 뇌성(雷聲)이 울리더니….』어느 유명한 여류 수필가의 수필 첫 구절이다.프랑스 유학한 것을 자랑하고 싶었나.『우르르 쾅쾅 천둥이 울리더니…』라고 쓰면 될 것을 프랑스말로 『뚜뚜랑 땅땅…』 이라고 썼다.우리 말 보급에 앞 장서는 이경복씨가 최근 펴낸 『겨레여 생각이여 말이여』에 소개한 지식인의 헛소리 중 한 사례다.
이씨는 고뿔 걸린 사람이 쓰는 마스크를 꼭 입마개라고 한다.
그런데 약방에 가서 입마개를 찾으면 『아,마스크요』하면서 내준다는 것이다.마스크란 서양에서도 복면용 탈을 뜻하거나 얼굴의 낮춤말인 「낯짝」이라는 뜻으로 쓰이는데 왜 한국사 람이 약국에서 낯짝을 찾느냐며 개탄하고있다.
소설가 김성동씨는 택시를 타면 예컨대 『구기땅굴로 갑시다』라고 말한다.운전기사가 의아해서 머뭇거리면 그는 마지못해 구기터널로 바꿔 말한다.소설『국수』에서 아름다운 우리 말을 펼치고 있는 김씨는 달리기를 어째서 조깅으로 말하며 헐값 팔기라고 하면 될 것을 왜 바겐세일이라고 쓰느냐며 늘 한심해한다.
전래소설 『장산곶 매』를 쓰면서 한자조차 극도로 피한 백기완씨는 땅굴을 맞뚜레로 쓰자고 한다.맞뚜레란 바닷가 갯벌에 사는게나 낙지들이 앞뒤가 통하게 뚫어놓은 굴을 뜻하는 방언이다.
법학도 출신의 국어연구가 남영신씨가 만든 『우리 말 분류사전』을 보면 맛깔 좋은 우리 말이 지천으로 널려있다.예를 들어 최근 허용여부로 논란이 일고있는 심야영업소의 우리 말은 날밤집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우리 산하와 미술유산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유홍준씨가 참치센터에서 느낀 분노는 당연하다.
차림표(메뉴)를 보면 참치 한 접시에「보통 2만원」「특 3만원」「스페샬 4만5천원」이라고 돼있다는 것이다.우리말에서 한자로,영어로 바꿔가며 말값마저 올라가는 것이다.하기야 우리말 사전이름이「에센스 국어사전」이니,「뉴에이지 국어사전」이니 더 말해무엇하랴.우리 말을 잃으면 우리 얼을 잃는다.
기자의 이 짧은 글에도 혹시 일본말투,영어말투가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뜨뜻해진다.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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