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원작과 한국정서 절묘한 배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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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우리나라 최고의 연극인이자 가장 한국적인 연극세계를 인정받고있는 오태석이 뜻밖에도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출했다.(10월23일까지 호암아트홀).세계 연극사상 가장 위대한 극작가이면서도 우리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낯설기만 했던 셰익 스피어가 비로소 오태석에 의해 가슴깊이 헤집고 들어온다.
요즈음 패러디란 미명아래 셰익스피어 작품들이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있는 마당에 오태석은 오히려 전통을 고집한다.이번 공연은원작의 골격과 맛을 살리면서도 한국적 번역과 해석과 연출이 충분히 녹아들었다.
무대는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글로브극장의 기본구조를 차용해 「열린무대」 안에서 자유롭게 장면을 전환시킨다.낡은 벽돌 질감의 무대장치 위에 차갑게 설치된 두개의 쇠파이프는 「전통과 현대」「사랑과 복수」의 이미지를 발산한다.
오태석 특유의 장난기가 발동하는 기발한 의상과 세트 처리도 곳곳서 튀어나온다.특히 초야 장면이 압권이다.무대 바닥 전체에흰색 시트를 깔고 그 속에서 천진난만하게 뒹굴며 긴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은 이 연극의 가장 아름답고도 슬픈 장면이다.
한편 줄리엣역에 발탁돼 프로 무대에 데뷔한 주다정은 풋사과같은 설익음이 있지만 앞으로 대성할 재목임이 분명하다.
오태석은 끝끝내 캐플리트가와 몬테규가의 화해를 성사시키지 않는다.오히려 마지막 장면은 무시무시하게 칼을 겨루며 마감된다.
오태석은 세계 각지의 이유없는 반목과 소모적인 분쟁을 암시하며역설적으로 진정한 사랑과 화해를 호소하고 싶었는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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