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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등의 불' 경제에 기름붓는 국제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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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국제 유가가 계속 올라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시름을 더하고 있다.

원유값(미 서부텍사스 중질유 기준)은 지난 17일 배럴당 38.2달러까지 치솟아 1990년 이후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79년 2차 오일쇼크 때 수준(배럴당 44달러)에 근접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주로 들여오는 중동산 두바이유 값은 최근 31달러선을 넘어섰다. 정부는 올해 경제운용계획을 짜면서 두바이유 값을 연평균 25달러선으로 내다봤다. 이 전망이 빗나가면 물가와 국제수지.경제성장률 등 거시경제 전반의 지표들이 흐트러질 수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제 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무역수지는 7억달러 악화되고, 경제성장률은 0.1%포인트 떨어지며, 기업의 생산원가는 0.3% 상승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왜 오르나=먼저 수급 불안을 들 수 있다. 석유 수요는 세계경기의 회복에 따라 지난해 이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세계 석유소비 증가량의 35%를 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원유의 절반을 공급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거꾸로 석유 생산을 줄이겠다고 나섰다.

OPEC는 지난 2월 알제리 회의에서 4월 1일부터 하루 생산량을 250만배럴 감축하기로 결의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호상 연구원은 "수요가 늘어나면서 시장의 가격 결정력이 구매자에서 공급자 중심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산유국들은 달러화 가치가 급락하자 실질 수입을 보전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달러화 가치는 2002년 1월 이후 유로화에 대해 무려 48%, 일본 엔화에 비해선 28% 떨어졌다. 산유국들은 달러화로 표시되는 원유값을 계속 올려 봐야 실제 손에 쥐는 이익은 별로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다 초저금리로 오갈 곳 없는 국제 부동자금이 원유 투기에 나서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이후 테러가 끊이지 않는 등 중동정세가 갈수록 악화되는 점도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이준범 박사는 "이라크 공격 이후 최대 석유 공급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에 대한 미국의 입김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고 설명했다.

향후 유가 전망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견해가 엇갈린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성명기 연구위원은 "동절기 수요가 마무리됨에 따라 2분기부터는 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출입은행 경제연구소 이규환 팀장은 "OPEC는 예상보다 석유가격이 높게 유지됨에 따라 4월로 예정된 생산량 감축을 연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李팀장은 "투기적 수요만 가라앉으면 원유값(두바이유 기준)은 25달러 근처까지 다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박복영 연구위원은 "OPEC의 결속력 강화와 중동정세의 불안정으로 최근 몇년 새 석유시장의 구조 자체가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며 "고유가 흐름은 상당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호상 연구원도 "올 하반기부터 석유 수급의 불안정이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이지만 가격 하락의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기 대응책 마련해야=석유시장이 불안하지만 과거 오일쇼크와 같은 에너지 위기로까지 치닫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 다만 중국 등 후발 공업국들의 수요 팽창을 감안하면 장기적인 에너지 안정대책을 착실히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란 주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AIE)는 중국의 석유 수요량이 현재 하루 540만배럴에서 2025년에는 1090만배럴로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현재 OPEC의 하루 생산량(2450만배럴)의 절반에 가까운 물량이다.

KIEP 박복영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7%를 수입(세계 3위 원유 수입국)에 의존하면서도 해외 유전이나 대체 에너지 개발에는 소홀했다"며 "이제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에너지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중동과 사할린.동시베리아 등지의 유전을 자체 자금으로 개발해 원유 자급률을 20% 근처까지 끌어올렸다.

국민대 김종민 교수는 "차량 10부제 운행 같은 땜질식 처방으론 곤란하다"며 "에너지절약형 산업구조를 만들어 나가면서 해외 에너지 개발과 수입선 다변화 등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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