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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을 샀더니 석 달 새 20% 벌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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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호 32면

진주가 없다고? 양식장을 사라

ETF(상장지수펀드), 난 왜 몰랐을까

“투자는 대형 사기(big scam)다. 일반인들은 훌륭한 펀드매니저를 고를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매니저의 90%는 지수도 잘 쫓아가지 못한다.” 미국 하버드대 기금을 맡아 연평균 16% 수익률로 10여 년간 5억 달러를 23억 달러로 불린 ‘전설의 사나이’ 잭 마이어의 탄식이다. 그는 펀드 회사들이 수수료를 꼬박꼬박 챙기고 매매 비용을 유발해 투자자 지갑을 갉아먹는다고 했다. 그는 “결국 인덱스 펀드가 해답”이라고 했다.

불과 1년 새 천당과 지옥을 오간 한국 투자자 귀에도 쏙 들어올 만한 도움말이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사장은 “시장이 선진화할수록 ‘숨어 있던’ 저평가 종목이 사라진다. 증시로 돈이 몰리고 이런저런 주식들의 주가가 오르면서 종목 고르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흙 속의 진주를 찾기 어렵다면 차라리 양식장을 사서 진주를 키우는 것도 좋다. ETF를 통해 ‘시장이나 업종 전체를 사라’는 얘기다. 서브프라임 같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뒤‘장기투자의 힘’을 믿게 됐다면 더욱 요긴한 방법이다.

ETF는 상장지수펀드(Exchan ge Traded Fund)의 약자다. 지수 흐름을 쫓아서 투자하는 ‘인덱스 펀드’와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주식’을 교배해 만들었다. 거래소에서 주식처럼 매매하는 펀드가 ETF다. ‘코덱스 200’은 거래소에 상장된 200개 우량 종목에 투자하는 셈이다. PC의 주식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도 쉽게 거래할 수 있다.

1주만 사도 시장이나 업종을 통째로 사는 ‘분산 효과’가 매력이다. 따라서 수익률도 안정적이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식형 펀드는 1등과 꼴찌 펀드의 수익률 차이가 10%포인트를 넘었다. 그러나 ETF를 포함한 인덱스형은 3%포인트에 그쳤다.

우리CS자산운용 윤주영 인덱스운용팀장은 “뭐니뭐니 해도 ‘저렴한 비용’이 ETF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예컨대 ‘코세프 200 ETF’에 투자하면 보수와 매매비용으로 연간 투자액의 0.37%를 떼지만 주식형 펀드는 연 3% 가까운 돈이 들어간다. 노후자금이나 자녀 학자금 등을 위해 10년, 20년씩 투자한다면 이런 보수 차이가 큰 결과를 빚는다. ‘복리의 마법’ 때문이다. 1억원을 연 10% 수익률로 주식형과 인덱스형에 굴린다고 하자. 보수 차가 2%포인트라면 30년 뒤에 주식형은 4억원을 넘는데 그치지만, 인덱스형은 8억원 가까운 재산으로 불어난다. 물론 해마다 20~30%씩 수익을 내는 주식형 펀드를 고르면 좋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이런 상품은 갈수록 줄 것이다.

IT ETF가 성적 좋아

‘정보기술(IT)·자동차·은행주를 사라’. 재테크에 관심 있다면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 소리를 지긋지긋하게 들었을 것이다. 매력적인 종목인데도 불꽃장세에서 소외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IT만 봐도 1월 중순 저점 이후에 LG전자처럼 꾸준히 오른 주식이 있는가 하면, 삼성전자처럼 옆걸음질하다 3월부터 급등한 종목, 하이닉스처럼 오름세가 시원찮은 주식까지 천차만별이다. 이러니 종목 고르기가 쉽지 않다. 내가 가입한 펀드가 어떤 주식에 많이 투자했는지도 도통 궁금할 뿐이다.

그러나 IT 업종의 전체적인 호전 분위기를 중시하고서 삼성전자·LG전자·하이닉스 등의 30개 종목을 아우른 ‘코세프 IT ETF’에 직접 투자했다면 석 달간 20% 가까운 성적으로 돈을 불렸다.<그래픽 참조> 미래에셋의 ‘타이거 반도체 ETF’도 16% 수익률을 거뒀다.

시장 전체를 놓고 석 달 수익률을 비교해보면 ‘코덱스 200’(7.9%)과 ‘코세프 200’(9.4%)은 일반 주식형 펀드의 평균(9.2%)보다 못하거나 비슷하다. 그러나 장기투자 때 비용을 생각할 경우 이런 성적표가 지속된다면 ETF가 훨씬 많은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다.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이미 이를 간파했다. 지난달엔 펀드로 돈이 많이 들어온 상품의 1~3위를 ETF가 휩쓸었다.

해외 쪽에서는 ETF가 발군이다. ‘코덱스 차이나 H’는 석 달 성적표가 11%, 한 달 수익률은 15%에 이른다. 올 2월에 나온 ‘코덱스 재팬’은 도쿄 증시의 ‘토픽스 100’지수를 따르도록 설계됐는데, 1개월 수익률이 10%에 이른다. 지난 한 달간 중국 펀드(9.9%)와 일본 펀드(6.5%)의 평균 성적보다 우월하다.

삼성운용의 서경석 인덱스운용본부 상무는 “H지수의 상승률을 웃도는 중국 펀드는 드물다”며 “결국 펀드매니저의 능력보다는 시장의 상승 자체가 수익률을 결정하는 요인이다. 주식형 펀드를 잘못 고르는 것보다는 시장 전체에 고르게 투자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아울러 해외펀드가 환매신청 뒤 일주일 이상이 지나야 돈을 받을 수 있는 것과 달리 해외 ETF는 주식과 마찬가지로 매도일로부터 이틀 뒤 결제가 이뤄져 환금성도 뛰어나다. 국내에서 설정된 해외 ETF는 지난해 봄부터 매매차익에 대한 세금도 물지 않는다.

판매 창구에선 왕따?

ETF의 장점은 더 있다. 지난해 ‘분배금’으로 불리는 3%가량의 배당금을 줬다. 투자한 주식 현물에서 나오는 배당액이 재원이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시가배당률이 1.3% 수준임을 감안하면 쏠쏠한 용돈이 될 수 있다.

여러 모로 쓸 만한 녀석인데도 ETF 얘기를 꺼내면 “뭔 소리냐”고 낯설어하는 사람이 많다. 인덱스 펀드는 한번쯤 들어봤어도 ETF는 금시초문일 때가 잦다. A운용 관계자는 “보수가 낮아 판매사들이 창구에서 고객에게 권유하길 꺼린다”고 했다. 돈 되는 펀드를 주로 팔다 보니 ETF는 구석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구체적인 투자요령에 대해 우리CS운용 윤주영 팀장은 ‘적립식’ 기본기를 활용하라고 권했다. 매월 특정한 날에 ETF 10주를 직접 사서 평균 매수 단가를 낮추는 전략을 쓰라는 것이다.

나아가 ETF가 추종하는 지수가 전달보다 일정한 비율로 떨어지면 추가로 매입하는 작전이 좋다고 덧붙였다. 윤 팀장은 “생애주기에 따라 장기적으로 자산관리를 할 때 요긴한 투자수단이 ETF”라고 말했다. 다만 ETF는 쉽사리 사고팔 수 있어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시장이 조금만 움찔해도 ‘매도 유혹’에 휩쓸릴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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