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생산자 물가 9.7% 올라 … 재정부 “경기 하강 국면 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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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고, 앞으로 더 위축될 것이라는 정부의 진단이 나왔다. 기획재정부는 9일 발표한 ‘경제동향 보고서’에서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물가 오름세가 지속되는 모습”이라며 이같이 진단했다.

재정부는 “최근의 경제지표를 보면 우리 경제가 경기 정점을 지나 하강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세계 경제 둔화와 고유가, 교역 조건 악화 등으로 추가적인 경기 위축이 우려된다”며 “경기 안정을 위한 정책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저성장·고물가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실제 내수의 ‘나침반’격인 소비자 판매는 3월 4.2%로 지난해 수준(5.3%)에 한참 못 미쳤고, 서비스업 생산은 5.4%로 갈수록 둔화되고 있다. 취업자수는 목표치의 3분의 2도 되지 않는 18만40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또 한국은행에 따르면 4월 생산자 물가는 1년 전에 비해 9.7% 상승했다. 1998년 11월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생산자 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물가의 고공비행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품목별로는 국제 원자재가 상승 여파로 공산품은 물론 농림수산품과 서비스 가격이 일제히 올랐다. 특히 밀과 대두 등 국제 곡물 값이 오르면서 된장(22.2%), 마요네즈(7.9%), 밀가루(4.2%) 등 생활과 밀접한 음식료품이 많이 상승했다. 조류 인플루엔자(AI)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여파로 닭고기(-5.6%)와 쇠고기(-3.6%)가 떨어진 반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돼지고기는 28%나 올랐다.

서울지역 주간 평균 휘발유 가격도 처음으로 L당 1800원 선을 넘어섰다. 한국 석유공사가 5월 첫째 주 전국 1100개 주유소를 표본 조사한 결과 서울 지역의 무연 보통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주보다 21.73원 오른 L당 1802.15원으로 집계됐다. 전국 휘발유 가격도 19.36원 상승한 1751.52원으로 사상 최고치였다.

국제유가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6월 인도분) 값은 8일(현지시간) 배럴당 123.69달러에 마감한 뒤, 시간외 거래에서 124달러 선을 넘어섰다.

한은은 국제 원자재가가 오르는 데다 원-달러 환율도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어 당분간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최근 1주일새 50원 넘게 올랐던 원-달러 환율은 9일 전날보다 4.9원 하락한 1044.7원으로 마감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성태윤 교수는 “환율이 떨어지면 경상수지 적자가 커지고, 환율이 올라가면 물가 불안이 심해진다”며 “또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더 오르고, 금리를 내리지 않으면 성장이 둔화되는 등 딜레마에 빠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로선 세계 경제가 나아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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