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천 농림 “한·미 쇠고기 합의문은 위생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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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左> 등 당직자와 행정안전부 정남준 차관(뒷줄<右>) 등 정부 측 관계자들이 9일 국회에서 조류 인플루엔자(AI)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미국산 쇠고기 협상 문제로 사흘 연속 국회에서 혼쭐이 났다.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청문회(7일)에 이어 8~9일 대정부질문에서 정 장관은 야당 의원들의 질문 공세에 진땀을 흘렸다.

9일 질의에 나선 통합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한·미 간 쇠고기 합의문이 MOU(양해각서)인가, 행정협정인가, 조약인가”라고 묻자 정 장관은 우물쭈물하다 “위생협정”이라고 모호한 대답을 했다. 강 의원은 “어떤 성격인지도 모르고 미국이 요구하니 맺어 줬느냐. 틀리더라도 3지 선다 중에서 찍으시라”고 면박을 줬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뒤에 나온 한승수 총리가 “행정협정”이라고 대신했다.

8일엔 민주당 이목희 의원과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의 호통을 들었다. 위생 조건의 적용에 대해 상대방과 협의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협정문 25조’를 아느냐는 이 의원의 질문에 정 장관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한번…”이라고 했다가 “어떻게 모를 수 있느냐. 큰일났다”는 호통을 들었다. 강 의원이 “의원이 물으면 답을 해야지, 쓸데없이 빙빙 둘러서 하면 안 된다”고 지적하자 “처음이니까 용서를 바란다”고 말해 의원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7일 청문회에선 부적절한 답변으로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인터넷 스타가 되는 데 한몫했다. 정 장관은 “미국인의 95% 이상이 20개월 이하의 쇠고기를 먹는다는데 맞느냐”는 질문에 “확실히 파악되지 않았다”고, “지난해 농식품부가 작성한 협상 지침을 읽어봤느냐”는 물음엔 “그때는 내가 없던 때라서… 일일이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민주노동당은 8일 장관해임 건의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고시 연기, 재협상 vs 실익 없다”=대정부질문 이틀째인 이날 야당 의원들은 15일로 예정된 수입 위생조건을 변경하기 위한 농식품부 장관 고시를 연기할 것을 거듭 촉구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정부의 정책조정 기능의 허점을 우려했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국민의 85%가 협상 결과에 반대하고 있다”며 “중요한 변동사항이 있으면 입법 예고를 다시 할 수 있으니 고시를 연기하고 재협상을 하라”고 요구하자, 정 장관은 “과학적 근거가 아니기 때문에 (재예고는) 할 수 없다”고 버텼다.

한 총리도 “재협상은 실익이 없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한나라당 이군현 의원은 “정부 부처 간 정책조정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같은 당 정화원 의원도 “상황이 이렇게까지 오도록 방치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며 “총리실의 사전 조정 기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정부가 공공기관장 사퇴를 종용한다는 야당의 공세에 대해 “새 정권이 생겼으니 신임을 묻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이것은 신임을 위한 조치이지 경질을 위한 조치가 아니다”고 맞서기도 했다. 한편 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는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며 “고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글=임장혁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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